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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May 08. 2023

두배 반 정도는 힘든 인생

느리게 걸으며 아이와 함께하는 우리 부부 돌아보기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이 있었던 지난주, 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강원도 인제로 떠났다. 이곳저곳 열심히 다니던 우리 가족에게도 강원도 인제는 처음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 인제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비지 백반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자작나무 바로 근처에 위치한 숙소 체크인 시간 전까지 시간도 때울 겸 자작나무 숲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영차! 도착했다.”


“어 여기 길 안내가 있네?”


남편과 함께 길 안내도를 보았는데 대략 1시간 20분 정도 올라가면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고 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데?”


“별로 어렵지 않겠지 뭐. 너무 힘들면 중간에 돌아 나오자!”


사실 입구에서 바로 자작나무 숲이 펼쳐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안내도를 보니 산길이 쉽진 않아 보였다. 입구에 서있던 자원봉사자 아저씨께 물어봤다.


“애랑 가기 힘들까요?”


“힘든 건 사람마다 다르죠. 아스팔트 길은 유모차도 갈 수 있으니까 한 번 가봐요. “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그럼 어느 코스로 가는 게 좀 더 나을까요?”


“일단 아스팔트 길로 올라가신 다음에 내려올 때 산길로 내려오세요. 그게 좀 더 나을 거예요.”


“네에,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고는 아저씨가 추천한 아스팔트 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로웠다. 아이와 함께 벌레도 구경하고, 풀도 관찰하면서 천천히 길을 걸었다. 그런데 한 시간 이십 분이 넘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추월해 갔다. 처음엔 웃으며 걸어갔던 아이도 점점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힘드네?”


“그러게.. 중간에 돌아 나와야 하나?”


이렇게 묻는 내게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재민이가 조금은 힘든 걸 극복해 내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우리 한 번 해보자.”


재미로 시작한 산행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그게 바로 우리 부부의 인내심 테스트의 시작이었다.


역시나. 아이는 점점 힘들어하더니 안아달라고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힘들어~ 안아줘~~”


“재민아. 조금만 더 가보자. 우리 이제 형아니까 조금 더 갈 수 있을 거야.”


“싫어. 안아줘.”


“재민아. 엄마 아빠도 똑같이 힘들어. 그럼 우리 저 바위 위에서 조금 쉬었다가 가자.”


바위 위에서 물로 목을 축이고 조금 더 걸어가려는데 아이가 다시 또 울상을 지었다.


“왜 안 안아줘~~ 엄마 미워!”


그러더니 푹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조금 기다렸다가 또 걸어가다가 토라지고, 기다렸다가 걷고 있는데 결국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미워!! 아빠 미워!!”


다행히 마침 근처에 벤치가 있어서 아이를 안고 달래주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그때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 가족을 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꼬마 몇 살?”


”….”


“할아버지한테 말 안 할 거야?”


“….”


“아 그래. 간식을 좀 줘야겠다. “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주머니에 챙기신 초콜릿이며 사탕을 꺼내셔서 아이에게 주셨다. 아이는 초콜릿과 사탕을 입에 물었다.


“그래 허허. 내년에 오면 훨씬 나을 거야. 할아버지랑은 이따가 저 꼭대기에서 만나자.”


“네…”


아이는 개미만 한 소리로 대답했다. 단 걸 조금 먹은 후 아이의 기분이 나아졌다. 앉아서 꽤 많은 시간을 쉬었더니 아이가 기운을 차리는 게 느껴졌다.


“우리 이제 출발해 볼까?”


아이와 우리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콜릿 덕분이었는지, 엄마 아빠가 아무리 떼를 써도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더 이상 생떼를 쓰지는 않고 입만 삐죽 나온 채로 걸었다. 그렇게 아이와 오르막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이 상황이 우리 가족이 지금 처한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첫째, 지금 우리는 남들보다 느리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안내문에는 분명 1시간 20분이 걸리는 코스였다. 어른 걸음으로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이 길을 걷자니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말 많은 사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엔 아이가 느려서 빨리 오르지 못한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페이스를 아이의 보폭에 맞추어 걷기 시작했고, 빨리 가는 것보다는 끝까지 간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지금 우리 가족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와 남편 모두 많은 걸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택했고 때문에 좀 더 천천히 가야 했다. 처음에는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 스스로가 그 길을 택했지 싶다. 우리가 내린 선택이기에 후회하지 말자. 느리지만 끝까지 가보자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둘째, 여러 사람의 응원을 힘입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자작나무 숲에 오르면서 어떤 사람은 쌩 하고 지나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해주고 또 자기가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도 만났다. 사실 아이가 없으면 아이가 있는 가족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아이를 우리 부부 대신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보니 회사에서 중간중간 익스큐즈를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걸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아이도 우리 부부도 힘을 내어 계속 걸어갈 수 있었다.


셋째, 계속 느리게 걷지만은 않을 거라는 희망이다. 스쳐 지나가는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은 우리가 아이가 어리고 약해서 느리게 가고 있지만, 언젠가 아이가 더 장성하면 우리와 보폭을 맞추어 걸을 날이 분명히 올 거라고. 그리고 더 나중에는 우리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도와 함께 걸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이다. 그날이 오는 걸 희망하면서 지금 좀 더 씩씩하게 이 길을 걸어가야겠단 생각이 든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던,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길었던 산행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을 완주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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