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해야 할 일과 일부러 하지 않는 일
업무를 하는 스타일은 그 사람의 성격과 참 많이 닮아 있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일을 대부분 빨리 처리한다. 일이 미적지근하게 남아 있는 걸 잘 못 견딘다. 이런 성격이면 좋은 점이 많다. 업무시간이 짧고 일이 명확하다. 반면에 이런 내 성격 때문에 유관부서랑 일을 할 때 오지랖을 부려 선을 넘는다는 평가를 듣는다거나, 검토 없이 너무 빨리 처리해 버려서 오류가 있는 일들도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일하는 방식과 일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꾸고 있다.
최근에 내게 하기 싫은 일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요청’이라는 제목을 달고 온 메일이었는데 전혀 요청이 아니었다. 힘이 센 윗사람을 참조자에 추가해 나를 압박하는 메일이었다. 상대방에게서 ‘하라면 해!‘라는 살기가 느껴졌다. 내가 봤을 때 아무리 봐도 될 것 같지가 않은 요구였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의 협조도 함께 구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우선 메일을 그대로 전달하기 전에 윗사람을 대동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메일 제목을 ’ 요청‘에서 ’ 문의‘로 바꾸어 이미 이야기를 쭉 해 놓았던 유관부서에 보냈다. 그러고 나니 유관부서에서 ’ 그렇게 해 줄 수 없다 ‘는 답변이 왔다. 내 입으로 반대하지 않아도 남의 입을 빌려 안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여기서 한 수 더 나아갔다. 원래라면 이 답장을 받고 나서 바로 정리하는 메일을 ‘그래서 안된답니다.’라고 보냈을 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메일을 보내지 않기를 택했다. 평소의 나였으면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독을 품고 뭔가를 압박해야 했을 상대에게 그걸 ‘못하겠다’라고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하는 건 내게 득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을 쓰려다가 조용히 실무자에게만 연락을 취했다.
“ㅇㅇ팀 메일 보셨죠? 요청하신 대로 업무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대신 다른 방법을 해 보면 어떨까요?”
누구의 일도 아니지만 굳이 해야 할 일이 있다. 팀 안에서 누군가가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다던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기꺼이 돕는 일 같은 거다. 이런 일을 틈틈이 해두면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크게 봐서는 팀워크를 다지고 추후에 도움을 받을 일이 반드시 생기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시간과 마음을 내서 하면 좋은 일이다. 반면에 일부러 하지 않아야 되는 일도 있었다. 오늘 같은 일이었다. 누군가의 자존심이나 감정을 상하게 할 일은 명확하게 표출하기보다는 돌려서 하는 편이 좋다. 때로는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리고 돌려돌려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