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내돈내산 리스트
원래부터 집안일 자체에 큰 꿈이 없었던 나는 아이를 갖게 되면서 더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더 쉬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겠다는 이유로. 이를 위해서는 여러 이모님들의 도움이 조금 필요했다.
먼저 건조기 이모님. 예전에 살던 전셋집에는 건조기가 없어서 빨래하기가 너무 불편했다. 빨래가 끝나면 옷들을 꺼내서 건조대에 너는 게 집안일에서 큰 일거리였다. 남편과 둘이 살 때는 그나마 할 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니 빨래 양이 엄청 늘어났다. 아이가 얼마나 침을 흘리고 옷에 뭔가를 묻히던지. 매일 서너벌의 옷이 더러워지고 이를 계속해서 빨아야 했기 때문에 빨래 통은 하루가 다르게 넘쳐났고, 그래서 거의 매일 빨래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당시 빨래 스트레스는 상상 초월이었다.
그래서 넓은 집으로 이사오면서 제일 먼저 건조기 이모님을 모셨다. 이거 무지하게 편하다. 두 개의 통에 넘치도록 빨랫감을 가득 쌓아 두었다가 세탁기에 한 번 돌리고, 건조기에 한 번 돌리면 그 주 빨래는 끝이다. 빨래가 금세 마르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세탁 빈도가 낮아졌다.
두 번째는 식기세척기 이모님이다. 사실 식기세척기가 없었을 때는 이게 좋은 줄 몰랐다. 설거지는 당연히 사람이 하는 거라는 인식이 있었고, 기계로 깨끗하게 세척이 잘 될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런데 이사할 때 친구가 식기세척기를 꼭 사라고 했다. 건조기만큼이나 삶의 질을 올려준다면서. 유럽에서는 건조기 없는 집은 많아도 식기세척기 없는 집은 없다나.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유럽 여자들이 잘 쓴다니 좋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식기세척기를 구매했다. 업자를 따로 불러서 식기세척기 사이즈에 딱 맞게 싱크대 속을 파 식기세척기를 넣었다. 비용은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했지 싶다. 소개를 해 준 친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식기세척기 이모님을 만나고 가장 좋은 것은 손님 초대의 부담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손님맞이 준비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설거지가 힘이 든다. 요리를 만들고 손님들과 밥도 먹고 수다 떠느라 한참 에너지를 소비한 후에 손님들이 가고 나서 설거지를 또 하자면 몸이 참 고단하다. 그런데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니 손님이 간 뒤 그 날은 음식 쓰레기만 비우고 그릇들을 물에 담가 두고는 푹 자면 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물에 불린 그릇들을 쏙쏙 집어 식기세척기에 넣고 세제를 넣은 후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세척이 끝나면 알아서 문이 열려서 물기 건조까지 된다. 스팀 기능이 있는 것도 있던데…
식기세척기 이모님의 소중함은 친정 집에 가서도 느낀다. 명절에 친정 집에 가면 음식 만들 때 일손을 보태고 설거지를 내가 도맡아서 하는데 가족들이 유난히 많이 오는 날이면 설거지가 버거워진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삭신이 다 쑤시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특히나 우리 집에서 식기세척기를 사용한 후부터는 사람이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하는 것 같아 설거지가 더 힘들다. 사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마지막으로 마켓 컬리와 쿠팡 프레시 이모님이다. 손님을 집에 초대할 때 메인 요리는 대부분 사서 내가 정성스레 만든 것인 양 그럴듯하게 준비한다. 밥이랑 국 정도만 직접 한다. 그리고 감쪽같이 플레이팅 한다. 이 스킬은 특히 시부모님께 식사 대접을 할 때 매우 유용하다. 지난 번엔 이런 식으로 월남 쌈 키트를 쿠팡 프레시에서 주문해서 예쁘게 담아 상에 올렸는데 어머님이 어떻게 이런 걸 준비했냐며 본인은 이런 걸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줄 몰랐다고 놀라셨다. 나는 “그냥 조금 준비해봤어요.”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진짜로 한 줄 아시도록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게 포인트. 그리고 사실 대기업 솜씨가 나보다 낫다.
일하면서 살림을 잘 하기는 사실 어렵다. 식구들 굶기지만 않으면 다행인 것 같다(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직장에 다니지 않더라도 아이가 있으면 살림을 하기가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가 심해지다보면 정작 가족들을 사랑하기가 어려워진다. 잔소리만 는다. 엄마들은 잔머리를 굴려야 한다.
나는 초기 투자비용은 조금 들더라도 이런 식으로 일을 줄여 시간을 만들어 보기를 추천한다. 진짜 이모님은 아니지만 참 많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진짜로 이모님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경제적이다.
돈 열심히 벌어야겠다.
Photo by Volha Flaxec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