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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후 다시 발견한 균형

내가 생각했던 삶과 다를지라도

by 서이담

이사를 해서 회사와 집이 멀어졌다. 길어진 퇴근 시간에는 법정스님 같은 분들의 강의를 듣거나 재미있는 동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하루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를 보면서 집에 갔다.


이혼과 그 후 이어진 실패한 연애로 자신의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느낀 주인공은 그 균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먼저 이탈리아에 들러 자신의 잃어버린 식욕을 찾고 그다음에 또 발리로 가 스승을 만나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며 스스로를 용서한다. 그런데 그 여정에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주인공은 사랑에 빠져서 행복해하다가도 과거 남자로 인해 흔들렸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로 마음먹는다. 이 부분은 좀 억지스럽긴 하다. 그런데 그때 여행에서 만났던 스승이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자신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그 속에서 더 큰 균형을 찾을 수 있다나. 그리고 주인공은 다시 남자에게 찾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이 이야기를 보는데 얼마 전의 내 마음이 스쳐갔다. 아이를 낳은 뒤 나와 남편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었을 때에 누렸던 시간적 물리적 자유를 포기하면서 아이에게 몰입해야 했다. 아이를 갓 낳고 휴직을 하던 시절, 나 자신을 잃은 듯한 느낌에 아이를 낳기 전의 자유로운 삶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미워지고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약간 사춘기 같은 시절을 겪었던 것 같다.


예전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하지 못해 힘들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내 몫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그때 나는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균형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스승의 대사를 듣고 나니 ‘아이가 있고, 그래서 조금 불편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삶 그게 나의 새로운 균형점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균형에서 벗어난 상태가 아니라 이 자체가 균형이었던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일을 활발히 하던 많은 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아이를 낳은 후 느끼는 상실감 말이다. 하지만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그 시간도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 나를 잃고 아이에게 소진되는 느낌을 가졌던 그 시간이 사실은 다시없을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야 뒤늦게 알았다.


일은 나중에 얼마든지 열심히 할 수 있으니 아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더 힘써보라고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쨌든 그 시간은 아이와 나를 위해 주어진 거였으니까.


사실 열심히 할 때가 되면 격하게 놀고 싶다. 하하.


Photo by Christophe Hauti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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