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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는 아니지만

노력이 필요한 고부관계

by 서이담

사람의 됨됨이와 상관없이 그 관계 자체가 어려운 사이도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고부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증명하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참 가깝고도 먼 어려운 사이다.




아이가 폐렴에 걸려 무척 아팠던 적이 있다. 아직 감기가 폐렴으로 번지기 전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잠깐 아이를 등원시키지 말고 집에서 돌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가 모두 직장에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연차를 내지 않는 이상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회사도 연차를 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그 날 저녁 하원길에 아이 숨소리가 이상하다며 남편이 다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고, 결국 아이는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아이의 첫 입원이었다.


도저히 연차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긴 했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일을 하기로 하고 컴퓨터를 들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과 교대로 연차를 내서 아이를 간호하게 되었다. 입원은 내 예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그중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아이가 움직이다가 링거 바늘이 빠질 때였다. 간호사실로 가 바늘을 꽂기 싫어 몸을 비틀며 울부짖는 아이를 온 힘을 다해 붙잡고 다시 바늘을 꽂아야 했다. 아이가 작기 때문에 혈관도 미세해서 한 번에 링거 바늘을 꽂지 못하면 아이도 힘들어했고 내 마음도 아팠다. 일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입원기간 내내 나를 무척 괴롭혔다.




그런 상황에서 며칠 후 병실에 시어머니와 도련님이 왔다. 잠깐 나가서 저녁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오라고 우리 부부에게 말씀하시고는 병실에서 아이를 돌봐주셨다. 남편과 병원을 나와 근처 중국집에 가서 따뜻한 밥을 먹었더니 조금 살만 해졌다. 시어머니가 당시에 먼 곳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데도 아이를 보러 먼 길을 와주시고, 또 이렇게 우리에게 쉼을 주신 게 감사해서 택시비라도 하시라고 현금을 찾아 어머님이 떠나실 때 드렸다. 그런데 어머님은 한사코 거절하시더니 생각지 못한 말씀을 하셨다.


“얘, 너 이렇게 돈으로 모든 걸 대신하려고 하는 거 아니다.”




당시에 너무 지쳐서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있었던 터라 이 일은 내게 크게 상처가 되었다. 그때는 뭐가 그리 억울했는지 퇴원을 해서도 이 일을 여러 차례 얘기하면서 애꿎은 남편만 들들 볶았다. 남편이 결국 이 얘기를 시어머니께 털어놓았고, 시어머니는 남편과 전화통화를 한 며칠 후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나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나도 그때 손주가 입원을 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몰랐다. 너희가 힘들게 번 돈인데 자꾸 우리에게 주려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 미안한 마음에 받지 않으려고 한 말인데 네가 상처를 받았다면 사과할게. 미안하다.”


나중에 듣고 보니 시어머니는 남편이 전했던 나의 마음 상태를 듣고 며칠간 앓아누우셨다고 한다. 당신은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참 황당했을 것도 같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용기를 내서 우리 집에 찾아와 뚱한 며느리를 앞에 두고 사과를 하셨다. 만약 나라면 며느리에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 행동이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전까지는 이런 일이 없어서 고부갈등이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래 살아온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이해되는 배경지식이 켜켜이 쌓여 오해를 줄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에서는 오해나 차이가 생각지 않게 생길 수 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그 갈등의 골을 계속 깊어지게끔 만드느냐 아니면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진짜 가족이 되어 가느냐는 서로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보여주셨듯 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결국 진짜 가족이 되지 않을까?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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