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일, 육아
대학교에 다닐 때 우리 집과 학교는 꽤나 멀어서 한 시간 반이 넘게 지하철을 타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이런저런 공상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아, 너무 심심하다. 이런 시간에 나와 똑 닮은 미니미가 하나 있어서 같이 이야기하면서 집에 가면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십 년쯤 지난 어느 날 친정 집에서 100일도 안 된 아이를 돌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드디어 나와 닮은 미니미가 생겼다. 그리고 24시간 붙어있다. 힘들어 죽겠다. 조금만 떨어져 있었으면!'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10년 전 바라던 소원이 좀 많이 늦게 이뤄졌지만 나는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땐 2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줘야 했기 때문에 백일까지는 잠도 잘 자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이 온다. 그 상황에서 나는 1시간만이라도 제발 아이와 떨어져 온전히 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이가 자기 의사표현도 잘하고 10시간이 넘게 통 잠을 자는 지금도 가능하면 빨리 ‘육퇴(육아 퇴근이라는 말로, 아이가 잠든 후 부모의 쉬는 시간을 의미)’를 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보통은 아이가 잠들면 나도 잠든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러던 중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갔는데, 한 소녀가 다리가 불편한 자기 동생을 계속 업고 다니는 것을 보고는 소녀에게 말했다.
"짐이 많이 무겁겠구나."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도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니까."
가끔은 정말 짐처럼 내 어깨를 짓누르기도 하고, 엉엉 울고 싶어 질 정도로 힘들기도 한 건 사실이지만, 당연하게도 내 아이는 짐이 아니다. 그냥 내 아이지. 그리고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아이를 통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선물 받았다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벅찼던 마음, 아이의 배밀이와 첫걸음마, 옹알거리는 소리, 아이가 우릴 보고 웃는 웃음, 교감의 순간까지 아이를 낳았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과 함께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겠지.
당장 육아가 심적으로 많이 지친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도움을 청하고 조금 쉬어야 한다. 하지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는 짐이 아니라 보물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지금 내 시간과 정성이라는 큰 대가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다는 것을.
Photo by Marek Studzinsk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