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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Feb 07. 2024

도망가자

물리적으로 멀어지기

한 달 전쯤 출근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하루하루 무거운 이불을 두른 듯한 느낌이었다. 춥고 어둡고 무거웠다. 날씨도 그렇고 몸도 그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다.’


하루 정도 휴가를 내고 갈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동남아는 너무 멀었고, 그나마 일본이 가까웠는데 일본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오키나와에 가기로 했다. 저렴한 날짜를 고르고 골라 비행기를 예약하고 호텔을 둘러봤다. 모든 것이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저 따뜻한 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출발하는 날, 마음이 좋았다. 가서 푹 쉬다 와야지 생각했다. 이런저런 미흡한 점들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여행하는 동안 몇 번이나 그 다짐이 무너질 뻔했다.


‘내가 왜 여행 와서까지 마음을 졸이고 있나. 여긴 춥고 팍팍한 현실이 아니잖아.’


퍼뜩 정신이 차려졌다. 느슨하게 지내보자고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춥고 건조하고 무거운 현실에서 길들여진 습관은 잘 벗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벗어나니 좋았다. 벗어나니 그러니까 진짜로 물리적으로 멀어지니 마음도 불안도 덜해졌다. 내가 이래서 여행을 갔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올 해는 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고. 자주 도망쳐야겠다고. 그렇게 현실을 살아낼 힘을 비축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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