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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22. 2024

내가 먼저일까 네가 먼저일까

서로가 없으면 무의미한 관계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은 연결되어 있다. 사물들과의 관계에서 당신의 내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당신과 사물들과의 관계는 당신과 당신 자신과의 관계와 같다. 

- 안셀름 그륀 <삶의 기술>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휴직을 쓴 뒤 다시 복직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남편은 아이를 봐줄 테니 혼자서 여행을 다녀와도 된다고 했다. 나는 그때 4박 5일 정도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계절도 좋고 경치도 좋았다. 맛있는 것들도 찾아 먹었다. 그런데 마음이 공허했다. 3일째가 되는 날엔 숙소를 나서기도 싫어졌다. 짜 놓은 일정이 아까워서 숙소를 나서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저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두고 온 남편과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 이후로부터 일 때문이 아니고서는 혼자서 해외여행을 하는 일은 없다. 그러기 싫다.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꼭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함께해서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혼자보다는 낫다. 좋은 걸 보면 "와~ 좋다. 그렇지?" 하고, 힘든 게 생기면 "너무 힘들어. 쉬었다 가자." 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여행의 핵심이다. 


여행뿐만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남이 있기에 의미가 있다. 내 생각과 행동, 심지어 나의 존재까지 타인의 인정과 수용의 결과물이다. 아무도 없는 세상 속에 나만 살아간다면 나는 그 어떤 발전도 할 수 없으리라. 안셀름 그륀이라는 수도사는 나와 타인의 관계를 넘어서 나와 주변 사물들과의 관계까지 이를 확장시켰다. 거기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을 대하는 것은 곧 나를 대하는 것이라는 걸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를 일찍 깨닫고 친절해진다. 타인을 친절하게 대하는 게 곧 나를 친절하게 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역지사지, 물아일체. 나는 어리석게도 이제야 조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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