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1의 읍소
맞벌이부부다 보니 방과 후활동과 학원 스케줄을 적절히 짜는 게 중요했다. 학원을 다녀온 뒤 하교를 맡기거나 어머님께 부탁을 드려야 하는데 하교를 맡아줄 사람이 너무 힘들지 않게, 그리고 아이가 너무 지치지 않도록 하는 게 포인트였다. 그래서 학교 스케줄에 맞춰 매일 태권도를 보내고, 중간중간 영어 학원을 끼워 넣고 금요일에는 학원을 모두 가지 않고 방과 후 수업 하나만 넣는 스케줄을 완성했다. 그러다 보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아이가 오후 4시쯤 집에 돌아오는데 금요일 하루는 오후 2시 반 정도에 돌아오게 되었다. 아이도 만족하고 우리도 만족하는 어느 정도의 타협이 잘 된 셈이다.
하루는 시할머님 생신이어서 식구들이 다 같이 모였다. 가족모임에는 재민이 또래의 육촌 조카도 함께 왔다. 육촌 조카는 요즘 태권도 단 수를 높이는 대회를 준비하느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태권도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금요일 하루는 학원을 모두 빠지고 방과 후 수업만 하는 재민이에게 우리도 금요일 수업도 함께 하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해 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금요일에 남편이 재택을 하면서 아이를 보고 있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재민아. 우겸이는 토요일까지 태권도를 다닌대!"
"(무관심한 목소리로) 응..."
"재민이도 태권도 금요일까지 다녀보는 건 어때? 방과 후 끝나고도 태권도 갈 수 있어."
"싫어."
"왜?"
"나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맨날맨날 바빠."
"웅 그렇지. 그런데 금요일은 집에 일찍 오잖아."
"아냐. 내가 맨날맨날 학원 다니느라 얼마나 바쁜데. 나도 좀 쉬어야 돼."
"(살짝 당황) 어.. 그래?"
"(엄마가 당황한 걸 눈치채고는 좀 더 센 말투로) 나도 힘들어. 힘들다고! 나도 쉴 시간이 필요해."
"어.. 어 알겠어."
"(쐐기를 박는) 나도 힘들다고~~~!!!!"
아이에게 스리슬쩍 스케줄 변경을 시도해보려고 했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아이는 생각보다 단호했고 완강했다. 다른 아이를 핑계 삼으려 했던 나의 얕은 꾀는 아이의 강력한 읍소에 물거품이 되었다. 원래 이런 아이었나? 아니다. 내가 우기면 별 수 없이 넘어가는 아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런데 지금 아이는 많이 성장해 있었다. 이제 논리로 되는 나이었고, 나를 이길 수도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너무 신기했다. 몸만 많이 큰 줄 알았는데 어느새 머리도 이만큼 자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