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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05. 2021

영정 사진 대신 인터뷰를 시작했다

prologue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때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비통한 얼굴로 집에 오시더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시며 엉엉 우셨다. 꿈에서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많이 슬펐다. 누군가의 예기치 못한 죽음을 겪은 사람이 느낄법한 황망한 감정을 생생히 체감했다. 지금도  꿈이 생생할 정도로.


꿈은 반대라고 했던가,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훨씬 빨리 세상을 떠나셨다. 하지만  꿈은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있다. 아마도 할머니라는 존재가 어린 내게 그렇게 컸었나 보다.




할머니는 직장을 다니던 엄마 대신 어린 시절의 나를 키워  고마운 존재다.  많은 시간을 보낸 만큼 나를 엄마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고, 나도 할머니에게 엄마 앞에서보다  솔직하게  밑바닥을 드러낼  있었다. 보통의 조부모와 손주의 서먹한 관계와는 달랐다. 우리는 마치 엄마와 딸처럼 서로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많은 시간을 가깝게 보냈다.




내가 대학생일 때 할아버지 암이 재발했다. 할머니도 적지 않은 나이에 병수발을 하며 긴 간병생활을 하셨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할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그 시절 나는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질 못했는데 그게 아직도 후회된다. 말도 많이 걸어드리고 시간을 같이 보낼 걸 싶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나는 고시공부를 그만두었고  취직했다. 할머니 댁이 우리 집보다 출퇴근이 편해서 할아버지의  방에 내가 잠깐 들어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낼 동안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할머니와는 자연스레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삶에서 할머니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었다.




죽음은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작년 남편의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남편은 취미로 사진을 찍곤 했는데, 가족들이 모이면  모습들을 사진으로  남기했다. 그리고 연로하신 남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영정사진도 미리 만들어 두었다.


남편의 모습을 보고 아직 정정하시긴 하지만 나를 위해 내 할머니의 죽음도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로 할머니를 남겨보기로 했다.




글을 쓰려고 하니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아는 할머니가 내 기억 속 할머니뿐이라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한 번도 나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고,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키웠던 사람이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물론 없었다.


"잇, 할머니가 멀쩡히 살아계신데 고민하지 말고 직접 물어보지 !"


여기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퇴근을 하고 거의 8시가 되어가던 어느 날, 이런저런 걱정과 기대를 안고 수화기를 들었다.


나: 할머니!!
할머니: 어어 그래~

아마도 내 목소리를 바로 알아채지 못하셨던 것 같다.
나: 할머니 저예요. 이담이!
할머니: 어어 이담이!! 그래 잘 지냈냐? 네 남편이랑 아들은 잘 있고?
나: 네네. 잘 있죠. 할머니 이번 명절에는 할머니 집에 내려가려고 해요.

할머니: 나 보러 온다고? 시댁은?
나: 이번 명절에는 5인 이상 모이지를 못해서 시댁도 친정도 가족모임을 갖지 않기로 했어요.

코로나가 부쩍 심했었던 올해, 친정도 시댁도 모두 가지 않기로 했는데 오히려 그래서 인터뷰할 짬이 났다.

-!


할머니: 그럼 시댁에도 친정에도  가는데 여기엘 오겠다고?
: , 할머니한테 궁금한  많아서요. 정확히 말하자면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서요.




할머니는 예상외로 무척 좋아라 하셨다.


예전부터 엄마처럼 책을 많이 보더라니 글을 쓰게 되었구나!” 하면서 칭찬을 하셨다. 그리고는 어떤 방법이든 괜찮으니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하셨다. 아마도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남길  있다는 기쁨과 오랜만에 손녀와 이야기를 오랫동안   있겠다는 설렘이 오갔으리라.




할머니: 저녁은 먹었니?
나: 네 먹었어요.

사실은 안 먹었다. 그런데 8시 넘어서까지 밥도 안 먹었냐고 잔소리하실 게 뻔해서 둘러대었다.

할머니: 네가 글 쓰는 거 말여. 그래 알았다. 근데 왜 갑자기 나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을 했대? 내가 뭐 엄청난 굴곡이 있는 인생을 산 건 아니잖어.
나: 그냥, 쓰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니 내가 할머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거 같지 않더라고요.

차마 영정 사진처럼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을 내뱉진 못했다. 그래도 할머니를 글로 담고 싶다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할머니: 그렇게 오래 같이 살았는데  러?
: 아니, 내가 태어난 이후의 할머니만 알지  전의 할머니는 모르잖아요. 그래서 할머니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어요.

할머니: 난 뭐 남들처럼 전쟁을 심하게 겪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그 속에서도 굴곡이 있는 삶을 살았지. 글을 쓰려면 얘, 아주 가난했다가 성공했다는 그런 글이나 아주 부자로 살다가 망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내 얘기는 그런 이야기는 아녀. 살면서 고생해가며 여러 가지를 느꼈던 그냥 평범한 이야기지.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이 대목이 되게 귀여웠다. 굴곡이 있는 삶을 훈장처럼 이야기하시는 할머니. 평범했다면 평범했겠지만 그 속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딸로서,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많은 눈물과 기쁨이 있었으리라.




나: 어쨌든 할머니 이번 연휴에 한 번 들를 테니까, 아주 어릴 적부터 할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 기록도 해보셔요.
할머니: 그래 알었다~ 근데 생각이 잘 날 지 모르겠어. 나도 이제 나이가 먹어가지고.


사실 나는 여기서 통화를 끊으려고 했었는데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벌써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의 유년기, 청년기, 결혼 이후, 자식들에 대한  등에 대해 질문 리스트를 먼저 만들어 두었지만 이런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었으니까.


To be continued...


Photo by Tiago Murar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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