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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09. 2021

연애편지 한 뭉텡이

04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시골-서울을 오가는 로맨스


2021년 설 연휴 첫날이다. 정부가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한 관계로 시댁과 친정 방문은 패스하기로 했고, 시간도 있겠다 할 일도 있겠다 겸사겸사 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다.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다 먹고, 외숙모가 사 온 거대한 참외와 귤을 먹으며 인터뷰를 했다. 할머니는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약간 귀찮아하시는 기색이면서도 이야기를 줄기차게 이어 가신다. 오늘은 엄마도 잠깐 할머니 집에 왔다.


오늘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연애 이야기부터 풀어가 보기로 했다.


나: 할아버지랑 어떻게 만나셨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학교를 다녔어. 할아버지는  동네 고등학교를 다니고 나는 중학교를 다녔지. 할아버지네  앞에 마당 가에  느티나무가 있었어.  느티나무를 지나서 등교하던 길이 기억나. 같이 학교 다니니까 저거는 누구 , 저거는 누구 아들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 너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하얀 칼라 달린 교복을 입고 다녔지. 남자들은 검은색이나 감색 교복에다가 모자를 쓰고. 당시에 할아버지랑 결혼을  짝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어.


나는 중학교밖에  나왔어. 사실 가려면   있었는데 통학길이 너무 멀어서( 4km 정도 되었다고 ) 고등학교까지는 힘들어서  다녔어. 그리고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대를 했어.  아버지가 자식 열심히 가르쳐서  살게 해야겠다는 의욕이 없었어. 스케이트 타고 기타 치던 한량이셨으니까  다했지 . 그래서 나는 중학교만 졸업했는데 지금 와서는 어려워도 열심히 다닐  후회가 . 그렇게 중학교만 졸업을 하고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면서 21살까지 지냈어.


중학교 다닐 때 집이 머니까 학교를 가는 데만 한 시간이 꼬박 걸렸어.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고등학교에 가질 않았는데 지금은 그게 굉장히 후회가 돼. 어른이 돼서 내가 활동적이고 똑똑해 보이니까 다들 고등학교 이상 나온 줄 알았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서 속이 상했었어.


나: 그래서 할머니가 애들 대학을 보내려고 기를 쓰셨구나.


할머니: 그랬지. 내가 다 못 배웠으니까 애들 만큼은 남만큼 아니 남보다 더 가르치려고 했지. 남보다 더 똑똑한 사람 만든다고. 그러고 믿음 안에서 아이들 인성도 훌륭하게 만들려고 애를 썼지. 삐뚤어지지 않게 하느라고. 교회에서 그래도 자식들 잘 된 사람은 아무개 권사, 아무개 장로라고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 교회 안 나오는 자식들이 많은데 우리 집 삼 남매가 다 교회 나오고 열심히 기도 생활한다고. 특히 삼촌은 더 열심히 해서 중등부 고등부에서 교회 회장하고 그랬어. 엄마는 교회 환경정리 다 했고.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되면은 글씨 쓰고 장식하는 것을 도맡아 했지. 이모는 성가대를 열심히 하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중에도 잘 되게 만들어 주시더라.


나: 그래서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어떻게 만나셨다고요?


할머니: 네 할아버지가 우리 집안 오빠랑 친구였어. 아마 내 얘기를 서로 했나 봐. 그 집안 오빠네 집이 과수원을 해서 가끔 마주친 적이 있거든. 그때도 양조장 집 아들이라는 소리만 들었지 같이 말을 섞지는 않았어. 당시에 할아버지네 친척 할머니가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중매를 했었어. 아마 그 할머니가 중매를 섰었나 봐. 어느 날 할아버지가 내 집에 바로 왔더라고 결혼 상대자라고 하면서 한 번 가보겠다고 하면서 온 거지. 할아버지는 당시에 서울에서 대학 다니고(할아버지는 나름 엘리트셨다. 그 시절에 Y대 물리학과를 다니셨으니까) 나는 집에 있고 그러니까. 얼마나 쑥스러운지 내가. 집에 왔는데 같이 차 한잔도 안 마시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나. 할머니 친정 집은 앞 뒤가 탁 트여서 오가는 사람들이 다 보였어. 그런데 그날 할아버지가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던 게 생각이 나.


 장면이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졌다. 젊은 청년이었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가슴 떨리며 바라보던 어린 할머니의 모습이 말이다. 그때 할머니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할머니: 영등포에 우리 막내 고모가 살았어. 나랑 다섯 살 차이여서 동생들보다 가깝게 지냈었지. 할아버지랑 그렇게 집에서   만난 이후에 결혼하기 전에 잠깐 고모네에 갔었어. 동네가 워낙 좁아서 집에서 만나면 사람들이 쑥덕쑥덕할까  할아버지랑 연애하기 전에  집에 잠깐 왔다 갔다 하면서 할아버지랑 잠깐 만나고 그랬어.


 번은 고모네 집엘 간다고 내가 말을 했었는지 할아버지가 찾아왔더라고. 그렇게 얼굴을 보고 가는데 내가 보내는  섭섭했었나  할아버지를 따라서 나갔는데 벌써 멀리까지 갔는지 보이 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친척 아저씨네가 그때는 굴다리가 있었는데 ( 길로 슬쩍 새심) 대방동이나 가야겠다고 하면서 가는데 어떡하다 보니까 할아버지가  튀어나오더라고. 불러야 하는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를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봤나 .


따라온 걸 보니까 되게 반가워하던 얼굴이 생생해. 같이 다방에 가자고 해서 만나서 거길 가서 오래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어. 그게 인연이 돼서 더 만나게 되고,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결혼까지 한 것 같아.

지금 같으면 전화 건 뭐건 할 텐데. 그땐 그런 게 없었잖아. 그래서 그때 시절에 할아버지가 편지를 아마 매일 썼나 봐. 그거를 다 가지고 결혼했는데 한 뭉텡이 됐어.


오우 인기쟁이 할머니셨네!


할아버지의 예전 사진을 봤는데 할아버지는  미남이셨다. 당시에는 시골에 대학 나온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 나름 내로라하는 인텔리였으리라. 그런데 할아버지가 시골처녀인 할머니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썼다니. 트루 러브로세!


나: 할머니는 답장 안 했어요?


할머니: 난 받기만 했지. 어쩌다 한 번씩 썼지. (우체국이 너무 멀어서 매일 가실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마 그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엄청 좋아했나 봐. 왜 시골에 있는 할머니를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졸졸 따라다녔는지. 왜 날 좋아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만만했나 봐. 지금 생각으론 그래.


주장로(할아버지 친구이자 같은 교회에 다니던 장로님)가 대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한테 파티 모임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니까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 간다고 그랬대. 주 장로가 “그런 사람이여 우리 친구가” 그러더라고 그것도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이 대목에서 그 자리에 있던 나와 남편, 엄마 모두 웃음이 터졌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순정을 장례식에서 칭송하는 친구라니. 뭔가 풋풋하고 순수한 우정이구나 싶었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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