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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12. 2021

귀여운 손녀딸 유괴범

06 할머니의 육아 일기


할아버지와의 러브스토리를 들었으니 이제 육아 스토리를 들어볼까?

오늘은 큰 딸인 엄마와, 작은 딸인 이모, 막내인 삼촌 낳은 이야기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할머니가 부채에 그린 그림, 엄마가 할머니를 닮아 손재주가 좋다고 했다


나: 할머니, 엄마 낳을 때 이야기해주세요.


할머니: 엄마 낳을 때는 첫 애라 집안의 기대가 컸어. 내 시어머니가 남의 집에서 한 번 자보지도 않은 사람인데 그렇게 서울로 올라오실 정도였지. 애 낳은 날 딸인 걸 아시고는 그 다음날 바로 내려가셨어. 너희 엄마는 머리가 먼저 나와야 하는데 손부터 나와가지고 다시 넣어서 돌려서 나왔어. 예술가가 될 팔자라서 팔이 먼저 나왔나 싶기도 해.


이건 유전인가 보다. 우리 엄마도 내가 역아여서 힘들게 출산을 강행하다가 수술을 했고, 나도 아이가 역아여서 출산과정이 나름 험난했다. 할머니 유전자가 잘못했다. 하하.



할머니: 그랬던 시어머니가 나중에는 큰손녀 그러니까 너희 엄마를 너무 귀히 여겨 주셨어. 어디 못 가게 하고 꼭 붙어 지내실 정도였지. 그런데 내 엄마, 그러니까 너희 엄마의 외할머니도 외손녀가 예쁘니까 한 번은 시댁에 와서 기웃기웃하다가 시댁에 말을 하고 너희 엄마를 외가로 데려간 거야.


그 때 시어머니가 당장 외가에 쫓아가서 손녀를 데리고 집으로 갔어. 말도 않고서 바깥에서 놀고 있던 애를 데려갔어. 놀란 내 엄마는 마을을 샅샅이 뒤졌는데, 다행히 동네 사람들이 어떤 할머니가 손녀를 데려가더라 소리를 해가지고 시어머니가 네 엄말 데려간 줄 알고 한시름을 놓았대.


내 아이도 두 집안의 첫째 아들이라 참 귀여움을 많이 받는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손녀딸을 놓고 경쟁하는 할머니들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데, 당시에는 적잖이 당황했을 이야기이지 싶다.


나: 이모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할머니: 너희 이모는 배에서 너무 요란스러워서 아들인 줄 알고 시댁에서 애를 낳기로 했어. 그런데 몸을 풀었는데(아이를 낳았는데) 딸이었어.


나: 그랬구나. 지금도 씩씩하신데, 뱃속에서도 그랬나 봐요.


할머니: 응. 반대로 삼촌을 임신했을 때는 너무 얌전해서 딸인 줄 알았어. 딸이 이미 둘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 낳고 싶은 마음이 참 간절했어.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라고 작정 기도를 했지.


삼촌 낳는 날이었어. 예전에는 동네에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있었어. 그때는 시장 안에나 가게가 있지 머리에 이고 다니는 장사들이 많았거든. 그런 아주머니 하나랑 내가 제법 친하게 지냈어. 내가 장사하는 일당을 드릴 테니 아이 낳는 걸 도와달라고 그랬는데. 그 아주머니가 애기가 아들이래.


너희 할아버지한테 내가 아들 낳았다고 전화하니까 거짓말 말라고 그랬어.


할머니는 내가 어렸던 시절에도 아들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손자를 손녀보다 좀 더 귀하게 보시는 듯했었는데, 아마 이런 경험 때문에 더 그러셨던 것 같다. 지금은 이런 모습이 없으시다. 그냥 자주 전화하는 사람을 이뻐해 주신다. 그런 면에서 난 몇 점짜리 손주일까?



Photo by Jeewoong Kang (instagram @nokcha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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