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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11. 2021

동네에서 가장 힙한 결혼식

05 할머니의 신혼 생활


할머니 댁에서 인터뷰를 하다 보니 분위기가 훨씬 편했다. 엄마까지 합세를 해서 할머니께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볼  있어 좋았다. 그런데 말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떻게 결혼을 하셨을까?


엄마: 엄마, 이담이한테 그거 이야기해줘 봐요. 얘, 너희 할머니가 그 당시엔 아주 신식 결혼을 했다고~


할머니: 내가 22, 너희 할아버지가 4학년 졸업하던  12 28일에 결혼을 했어. 아주 연한 핑크색 한복을 입고 그래도 결혼식장엘 가서.  당시에는 시골 동네에서 신식으로 결혼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식이었지.


시집간 후에는 시댁에서 살았어.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할아버지 졸업식 때였어. 할아버지도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 했는데 내가 가고 싶단 말을   모르는 촌스러운 사람이어서 차마 가지 했지. 그게 지금은 후회가 .


할머니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나뿐인 남편의 졸업식인데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런 말도 입밖에   없는 어린 며느리였던 것이다.  말은 하는 지금의 할머니와  매치가 않지만 어쨌든 예전에는 그런 분이셨다고 한다.


할머니: 너희 할아버지의  형이 집안의 셋째 아들인 너희 할아버지를 대학까지 가르쳤다고, 결혼한 후에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고  몰라라 했어. 그래서  나가는 부잣집 아들인 할아버지랑 결혼을 했는데 할아버지 대학 졸업 후에는 딸랑 냄비 하나 가지고 서울 친척 남매 집에 가서 얹혀 살았어.  친척 되는 남매가 대한극장 앞에 저동인가 거기에 살았는데. 그때 진짜 고생을 많이 했어. 부잣집으로 시집간다고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지.


저동에서 연탄가스 마셔서 머리가 깨져 가지고 수술비 대느라 패물로 받은 금반지도  팔고 그랬어. 그렇다고 부모들한테   보내 달라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어떻게 어떻게 살았어. 가끔 시어머니가 쌀을  두어  찧어서 보내주면 그렇게 반갑던 생각이 난다. 부잣집 맏딸로 태어나서 나도 고생을 모르고 살다가 결혼해서 초창기에 그렇게 고생을 했어.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부잣집 아들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도 유복한 집안의 장녀였고. 그런데 당시에는 첫째에게 재산을  물려주곤 해서 셋째 아들이었던 할아버지는 받은  없었다. 그래서 결혼  예상과는 달리 가난한 신혼 시절을 보내셨다고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기는 하지만   할아버지라는 분을 뵈었던 기억이 있다. 무척 부유하신 분이었는데자식들간에 사이가  좋았다. 우리 할아버지는 물려받은 것은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자식들 우애가 좋고 부모에게 효도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돈이 많다는   행복을 보장해주는  아닌  같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야 하는데 취직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여기저기 시험을 봤는데, 할아버지도 공부 못한 편은 아니거든 잘했는데 그때는 전매청(담배 인삼공사의 전신)이랑 여러 군데 시험을 봤는데 다 합격을 못했어. 그런데 다행히 중고등학교 선생이 되는 시험에 합격을 한 거야. 합격하자마자 수원에 있는 N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어. 거기가 첫 신혼집이었어.


계속 이사를 다니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고, 전세 내보내고 집을 사서 수리해서 또 팔고 그런 식으로 이득을 봤어. 얼마나 이사를 많이 다녔는지 몰라. 그렇게 해서 동빙고동에 나름 큰 집을 샀어. 그래도 할아버지 도움 안 받고 자립해서 마련했지. 할아버지가 S학교에 다니게 되가지고 신촌으로 이사를 오게 됐어.


할아버지가 시골 큰 댁에 가서 내 칭찬을 했대. 너희 작은 엄마 같은 사람 없다고. 참 보통 아니라고. 그 치다꺼리를 다 했다고. 그런데 정작 나한테는 직접 잘했다 소리를 생전 안 했어. 그런데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그랬다는 걸 할아버지 다 죽은 뒤에 얘기를 해주는 거야.


엄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자식들  키워줘서 엄마한테 고맙다고 그런 이야기도 하셨었어요.


할머니: 너희 할아버지는 항상 말 끝에 면박 주는 얘기를 하곤 했어. 저렇게 나를 무시하고 그러려면 왜 나랑 결혼했나 하고 그러면서 살았어. 돌아가실 때 무렵엔 “내가 장가 하나는 잘 갔어” 그러시더라고. “아니 그걸 알아?” 내가 그랬지.


이 얘기를 듣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말씀을 나누는 장면이 상상이 됐다. 할아버지께서는 병으로 오래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고, 다시 모시고 집으로 오고, 다시 모셔다 드리고, 결국에는 큰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의 앙상한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가 오래 아픈 덕분에 우리는 오래도록 할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할머니도 그랬으리라. 그때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날도 이야기하셨으리라.


할머니 결혼생활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면서 그 날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7OIFdWk83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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