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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13. 2021

도둑놈은 도둑놈을 낳고

07 애들 키우는 데 드는 건 돈뿐만이 아니다


나: 아이들 키우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어요?


할머니: 외삼촌이 체육대회를 하는데 차전놀이라고 짚으로 엮어서 대결 같은 걸 하잖아. 그걸 학교에서 했는데 대장이 됐어. 그리고 그 팀이 이겼어. 내 자식이 그거를 해서 이기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대장을 하니까 그게 자랑스럽더라.

차전놀이라고 라떼만 해도 체육대회 맨 마지막에 했던 놀이다. 출처: https://blog.naver.com/star00c/40090614380

나: 할머니는 엄마, 이모, 삼촌 모두 사립학교에서 가르치셨죠?


할머니: 응 그랬지. 사립학교는 여러 가지를 가르쳐. 수영도 가르쳐주고, 태권도도 가르쳐주고 그래. 공립학교는 제 돈 들여서 해야 하는데, 사립학교는 다 하게 해줘 가지고. 스키도 배우고, 태권도도 배우고, 수영도 배우고 그랬지.


나: 대신 등록금이 많이 들잖아요.


할머니: 그렇지 돈이 많이 들지. 지금은 고등학교까지 무상이라매. 근데 사립학교 다니면 실습비라고 그래서 돈을 많이 냈지. 사립은 시험 봐서 들어가고 그랬어. 또 그게 아주 재수 있어야 들어갔어. 떨어지는 애들도 많았어. 삼 남매가 다 학교에 되가지고 다녀서 그게 자랑스러웠지. 돈은 없었지만 부잣집 애들 다니는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많이 배운다는 자부심이 있었지.


네 엄마도 S학교 다니매 극성맞은 아이들한테 지지 않고, 네 이모도 그랬지. 지가 자유롭게 공부하지 학원이니 과외 수업받는 것도 없었고. 시험 보고선 점수 덜 맞으면 속상해하던 기억이 나. 몇 점 떨어졌다고 그래 가면서 그러면 다음번에 열심히 해서 떼놓으면 되지 않냐고 그랬지.


나도 엄마를 닮았었나 보다. 시험을 망친 날이면 왠지 억울하고 분해서 울곤 했었는데, 엄마도 그랬나 보다. 그땐 왜 그렇게 지기가 싫었을까.


할머니: 외삼촌은 P중학교를 다녔어. 그 중학교에서 전교에서 일등도 해봤어.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를 H고등학교로 배정받았어. 그런데 3학년 대학교 시험 볼 무렵에 간염에 걸려가지고 아주 너무 고생을 했어. 시험 못 보고 재수할까 봐 걱정했는데. 입원까지 했으니까 공부를 많이 못했지. 시험을 잘 못 봤지. 그래서 대학교 어디를 갈지 몰라서 Y대 K대는 간다고 학교에서 그랬는데 그걸 못 가고 H대를 가는데 그렇게 섭섭하더라고. 그런데 어떡혀. H대학교 입학 원서를 내놓고 합격만 시켜달라고 기도를 했어. 끄트머리로라도 합격을 시켜달라고 기도를 했어.


엄마 때도 끄트머리로라도 합격을 하게 해달라고 하시더니! 할머니 기도 레퍼토리인가 보다.


할머니: 이모는 시험을 잘 봤는데 Y대를 간다고 해. 학교에서 또 Y 대는 조금 세니까 L여자대학으로 가라고 했었어. 근데 이모가 여자대학은 안 간다고 남자랑 경쟁할 거라고 그랬어 여고를 다녔거든. 그래 가지고 지가 그렇게 간다고 그러는데. Y대 시험 봐서 합격을 했어. 엄마처럼 장학금 타지는 않고. 4년을 등록금을 계속 냈지. 그래서 이모를 융자 얻어서(빚을 내서) 가르쳤다고. 셋이 다 대학을 다니는데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래서 융자 얻어서 다니면서 취직해서 갚으라고 그랬더니 한 놈도 안 갚았어. 십 원 한 장 준 놈이 없어. 그때 그 돈 갚을 때가 제일 어려웠다.


자식은 도둑놈입니다 할머니. 그래도 걱정 마세요. 그 도둑놈은 또 다른 도둑놈을 낳습니다.


할머니: 네 엄마는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한 돈만큼 대학공부를 했고. 이모는 그래 가면서 성적은 A만 받지는 못했지만 쫓아갔나 봐. 그래 가지고 졸업하는데 등록금 때만 되면 200만 원 정도 됐었거든. 그 당시 월급이 300도 안 됐는데 그 돈을 어떻게 냈겠니. 그 돈을 쪼개 가지고. 졸업하고 났는데 또 대학원을 간대요. 이모가.


죽겠다고 대학 가르쳤는데. 대학원은 네가 가라고 그랬더니 또 시험 봤는데 합격했으니 어떡혀. 박사 다섯 개를 따 가지고 성공할 거라고 하더니. 대학원을 가자마자 결혼을 했어. 대학원 졸업은 했어. 그런데 1학년 다니고 2학년 때 결혼을 했나. 아무튼 결혼을 하고서 대학원을 다녔어. 근데 시집에서 대학원 등록금은 안 내주더라고.


할머니는 갑자기 말을 끊더니 나한테 이런 말을 하셨다.


할머니: 너 네 아들 뒷바라지를 네가 잘해줘. 둘이 하나를 낳으면 본전을 못 찾아.


당황했지만 당황한 티는 내지 않고 자연스레 말을 돌려봤다.


나: 할머니는 셋을 낳아서 좋았어요?


할머니: 보람 있고 좋았지. 건강하게들 잘 사니까. 하나 낳은 것보다 낫지. 서로 의지하고. 너도 혼자 있는 것보단 오빠들 둘이 있으니까 낫잖아. 무슨 일 있으면 상의하고. 서로 더불어서 힘이 되는 거야.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더 통화했다가는 잔소리의 바다로 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다.


나: 할머니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고생하셨어요!


할머니: 그래~너도 고생했다. 잘 자라.


Photo by Jeewoong Kang (instagram @nokcha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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