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행복해졌다
샤워를 하러 샤워부스에 들어갔다. 비누칠을 하고 몸을 다 닦고 났는데 평소라면 물이 다 빠져야 할 바닥에 거품과 물이 흥건했다.
“이상하다. 물이 잘 안 빠지네.”
처음엔 머리카락들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다 걷어냈는데도 물은 여전히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아닌가 보다. 수채구멍을 열어봐야겠다.”
스테인리스로 된 수채구멍 뚜껑을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희멀건 부유물들이 동동 그리고 머리카락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쌓인 먼지와 때 그리고 머리카락이었을 거다. 역하다는 생각도 잠시, 연 김에 여길 청소하기로 했다. 큰 부유물들과 머리카락은 솔로 걷어내고 휴지통에 버린 뒤 수채구멍 사이사이를 솔로 닦고 세제를 뿌린 뒤 또 한 번 닦아 주었다. 수채구멍 속 필터도 꺼내 똑같이 닦아 주었다. 수채구멍 커버 뒤쪽에 묵은 때들도 솔로 싹 벗겨내 주었다. 샤워한 내 몸보다 더 깨끗해진 상태로 만들고 나니 마음이 다 후련해졌다. 물도 잘 빠졌다.
가끔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가 김치통을 떨어뜨린다던가 하는 사고를 친다. 사고를 수습하느라 평소에 하지 않던 물걸레로 구석구석을 닦고 치우는 부엌 대청소를 하곤 하는데 청소를 다 끝내고 나면 김치통을 떨어뜨린 덕분에 묵은 청소를 하게 되어서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 다 빠지지 않은 덕분에 수채구멍 청소를 했다. 김치통을 떨어뜨린 덕분에 부엌 청소를 했다. 처음에는 귀찮고 싫은 일이었지만 다 수습하고 나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 되었다.
인생은 마인드 컨트롤의 싸움인 건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