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공격적으로
직장을 옮긴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만족스럽게 지내던 집도 직장을 옮기고 보니 출퇴근이 너무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한 시간이 넘게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회사에 가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남편은 이미 5년이 넘게 한 시간 반 거리를 버스와 지하철을 오가며 출퇴근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우리 집 내놓읍시다."
남편과 상의를 하고 집을 내놓았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있었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진이 빠질 무렵, 시세보다 조금 싸게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계약을 하고 집을 팔았다. 구매자가 이사 들어올 날이 빠듯해서 우리는 서둘러 주말마다 직장과 가까운 집, 직장과는 멀지만 교통이 괜찮은 곳 등 여러 채의 집을 탐색했다. 출퇴근이 편하고 예쁜 도서관이 근처에 있었던 지금의 집으로 옮겨왔다.
이사오기 전 서울 변두리에 그것도 분양받은 집에서 살았던 우리 부부는 빚이 없었다. 두 사람의 월급이 은행에 나가는 돈 없이 들어왔고, 넉넉하게 썼다. 자연스레 씀씀이도 커졌다. 신혼시절 같았으면 갈 생각도 못했던 카페에 가고, 돈에 구애 없이 식사를 주문했다. 그땐 그래도 괜찮았다.
이사를 오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 안에서도 교통이 좋은 곳에서 산다는 것은 거주비용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대출이자와 월세만으로 한 달에 우리 월급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날아갔다. 대출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우리가 모을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치를 정해두고 씀씀이를 줄였다. 외식메뉴는 예산에 따라 정해졌고, 절약하기 위해 해외여행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살짝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외식대신 냉장고를 털어먹는 일이 조금 익숙해질 무렵, 나는 한 가지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 집을 선택할 때 중요한 이유가 되어 주었던 도서관에 다니는 일이었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도서관에 가서 나무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풍성해졌다. 5월 초에는 긴 연휴가 있었는데 그때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집에서 뭔가를 만들어 먹고, 남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노래도 부르고, 조금 지루해졌다 싶으면 도서관에 갔다. 책을 읽고 서너 권의 책을 빌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바라던 여행 아닌가?'
분위기 좋은 곳에서 혹은 자연풍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남편과 아이와 밥을 해 먹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것, 그렇게 일상처럼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내가 바라는 여행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이곳에서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씀씀이를 줄여야 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관점을 달리해서 보니 나는 이미 지금 여기에서 누려야 할 것들을 잘 누리며 내가 바라는 여행처럼 일상을 살고 있었던 거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불만스러운 것들, 부족한 것들, 포기한 것들을 생각하면 행복에 닿을 수 없다. 만족스러운 것들, 충분한 것들, 주어진 것들에 집중하고 이걸 행복하다고 정의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에서 만큼은 무섭게 공격적으로 살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