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가볍고, 투명하게 살고 싶다. 나의 바람이다. 다른 것은 관심이 없다. 오직 그뿐이다. 열흘이 지나면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겨울의 일요일 오후, 이 글을 쓴다. 매일 입는 트레이닝 복에 롱 패딩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적당한 속도로 걸어서 사무실에 도착. 밤사이 차가워진 공기를 덥히기 위해 히터를 켠다. 가방에서 씽크패드 노트북을 꺼내고, 아이맥을 켜고, 턴테이블을 튼다.
‘오늘의 음악’은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노 트리오로 일컫는 키스 자렛(Keith Jarrett)-게리 피콕<Gary Peacock)-잭 디조넷(Jack DeJohnette의 <Still Live>. 1988년 ECM에서 레코딩한 앨범이다. 세 사람은 ‘스탠더드(Standards)’로 불린다. 이름 그대로 과거의 스탠더드 곡을 새롭게 연주하여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키스 자렛의 피아노, 게리 피콕의 베이스, 잭 디조넷의 드럼 연주가 흐르고, 그 사이사이 자렛의 신음소리가 파고들고, 관객의 뜨거운 호응이 이어진다. 말 그대로 ‘라이브’의 진수다. 살아 있다.
음악을 들으며 ‘오늘의 일’을 생각한다. 일이란 별게 아니다. 그날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제까지의 일은 잊는다. 내일의 일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 그 시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최우선에 둔다. 그럴 일이 없다면? 논다.
오늘은 주말 오후. 때마침 쌀쌀하지만 청명하다. 며칠 전 눈을 맞아 지저분해진 차를 말끔히 세차하기로 했다. 차 트렁크에서 세차용 수건을 꺼내어 물에 적셔 손으로 닦는다. 안과 밖을 깨끗이. 수건을 빨 때마다 손이 시렸지만 겨울은 그런 법이다.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탓하지 않는다. 계절다움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나이가 되었음에 마음을 놓는다. 여름에는 ‘쿨’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겨울에는 ‘터보’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된다. 쿨, 터보…… 너무 ‘스탠더드’인가.
화분에 물을 준다. 밀걸레를 빨아 사무실 바닥을 닦는다. 구석구석 놓치지 않을 거예요~ 청소는 김희애처럼 해야 한다. 세차하며 더러워진 수건과 청소하며 때가 묻은 밀걸레를 빨며 컵을 씻는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지인들이 선물해준 스페셜티 커피 파우치가 무인양품 클로젯 케이스에 한 아름이다. ‘오늘의 커피’는 폴 바셋 바리스타 파우치 에티오피아 구지 G1. 상큼한 산미와 꽃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커피를 내려서 자리에 앉는다. 그 사이 멈춘 음악을 다시 돌린다. 음악이 흐르고, 나는 커피를 마신다.
Myself. 나는 ‘혼자’ 일하고 혼자 놀며 하루를 꾸려간다. 그렇게 첫 책 『좋아서, 혼자서』를 펴냈다. ‘일’에 관한 책이었다. 때마침 세상은 그동안 당연시 하던 일의 풍경을 다시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글은 유행의 산물인가. 상관없다. 굳이 끄집어내자면 나는 ‘자유’를 말하고 싶었다. ‘일’에 관한 새로운 텍스트를 적고 싶었다. 일에서 삶(life)으로. 나의 ‘자유론’이 사회학적 화두가 될 날을 기대하는 마음, 그것으로 족하다.
단순하고 경쾌하게. 첫 책을 쓰며 나는 시종일관 이 태도를 유지했다. 우선 도시적 서정의 여유를 배경으로 삼았다. 촌스러운 건 싫으니까. 패배주의의 우울함도 제거했다. 중년 남자의 찌질함은 범죄이니까. 문장은 단순하고 태도는 무심하게. 그러나 텍스트의 배경은 인문학적 태도를 깔고 싶었다. 메이저와 마이너, 주류와 비주류, 유물론적 사유와 절대적인 믿음의 이종 교배를 심으려 했지만 인쇄로 완성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괜찮다. 그 한계도, 역부족도 내 것이니까.
1년이 지난 오늘, 첫 책을 쓰며 즐겨 찾았던 마포구 성산동의 카페를 찾았다. 두 꼭지를 쓰고 왔다. 두 번째 책의 첫 시작이다. 이 책에서 나는 삶의 ‘간격’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때마침 세상은 바이러스가 창궐해 물리적 거리두기를 강제하고 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무렵이면 거리두기가 해제되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볕이 드는 카페에서 이 책을 읽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마음의 거리두기만큼은 간직하면 좋겠다. 역병의 시대가 찾아온 이유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일러준 삶의 간격을 다시 좁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여지(餘地)’라는 말을 좋아한다. 무엇을 하든지 여지를 남기려 한다. 여지를 남길 때 가능성이나 희망이 깃든다는 삶의 이치를 믿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신해철의 노래를 들었다. 2014년, 신해철이 40대 중반의 태도를 담아 돌아온 EP 앨범. 타이틀이 아름답다. Reboot Myself.
두 번째 글을 쓰는 시간이다.
Reb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