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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희 북노마드 May 12. 2021

인생은 시몬스처럼

- 이제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파악하는 일이다. 일한다는 것은 무엇이 통하고 무엇이 통하지 않는지 간파하는 일이다. 제대로 산 것도, 제대로 일한 것도 아니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나는 책을 만든다. 아무래도 책에 관심 있다. 그럴까. 아니다. 책에 관심 있는 사람은 독자다. 지식인 못지않게 고급 지식을 자랑하는 독자가 널려 있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출판계 또는 책을 둘러싼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제는 아니다. 나는 출판을 둘러싼 갖가지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평범한 책을 만들어 돈을 들여서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방법에 이골이 났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으로 살기 원한다.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지금까지 해온 책을 만드는 일을 성심껏 하되, 그것에 인생을 바치고 싶지는 않다. 집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다섯 평짜리 작은 사무실에서 나는 주로 책을 읽는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문을 열어 환기시킨다.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히터를 켠다. 사무실 앞에는 다행히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하다. 그 아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가 책을 읽는다. 나의 하루 일과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다. 아무리 최소한의 삶을 염두에 두더라도 인간이기에 시선이 분산된다. 우선 뉴스를 최소화한다. 사무실에서 나는 두 대의 컴퓨터를 사용한다. 아이맥 큰 화면에는 ‘넷플릭스’가 스트리밍된다. 매일 같은 뉴스를 반복하는 국내 미디어를 클릭하지 않는다. 내가 시간을 들여도 아깝지 않은, 보고 나면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배경’ 삼아 노트북을 켠다. 노트북은 철저히 ‘일’을 하는 화면이다. 


노트북으로 하는 일의 기준은 ‘약속’이다. 그 일이 ‘약속’을 지키는 일인가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나’를 위한 일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최면이다. 그러니 그대여, 나를 위하여 일한다는 말을 집어치우라. 내가 만드는 한 권의 책이 나를 위해 쓰이면 그것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한 권의 책이 누구가가 꿈꾸고, 결정하고, 행동하게 만들면 그것은 가치가 된다. 만약 세상에 마케팅이라는 게 진짜 존재한다면, 그것이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했다면 그것은 내가 만들어 파는 제품이 ‘사람들’이 원하는 더 나은 삶에 쓰이는 일일 것이다. 


누구나 일을 한다. 일하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일이란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공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최소유효시장’이다.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Seth Godin)은 성공적인 마케팅은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있고, 세상에 기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을 고안하고, 그것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사랑받을 방식으로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이며, 그 소수의 집단, 즉 최소유효시장에 내재된 내러티브와 꿈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랬을 때 입소문이 나고, 오랫동안 꾸준히 일관되게 정성껏 변화를 기획하고 주도하고 신뢰받게 된다고 정리했다. 


나는 ‘소수의 집단’에 방점을 찍는다. 아이디어는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디어가 개인적이고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에 그친 아이디어, 소수의 집단을 무시하고 여전히 거대한 이야기를 남발하는 구시대의 레거시, 소수 집단의 의미 있는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또 하나의 헤게모니에 지나지 않는 생각들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나는 아이디어와 메시지에 귀를 쫑긋 세우지 않는다. 흘러가게 내버려둔다. 이제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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