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일을 찾았다고 인생이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매출이 줄고 이익이 줄고 소득이 줄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20세기형 몸뚱어리를 뒤뚱거리며 눈과 입으로만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는 이 땅에서는 단연 규모의 경제가 유리하다. 그럼에도 스마트하게 일하는 자의 시대가 속히 오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인생을 꾸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시킨 일을 해서다. 우리가 자신의 걸음으로 걷지 못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편의를 위해 살기 때문이다. 물론 한 끗 차이다. 내가 주도하지 않아도 내 일처럼 하면 즐겁다. 그 일이 타인과 세상을 위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옛사람이 옳다. 일에는 귀천이 없다. 일을 하는 나의 태도에 달려 있을 뿐. 하지만 누구를 위해 인생이라는 길을 걷는지 헷갈린다면 멈춰야 한다. 다른 길을 두리번거려야 한다.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걷기와 달리기는 중의적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걷는 것이자 몸으로 걷는 것이다. 기왕이면 실제로 걸어보자. 삶은 다분히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잘 살게 된다. 마음도 추상적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 게다가 시시때때로 변한다. 몸은 구체적이다. 물론 몸도 변한다. 관리하면 다져지고 방치하면 풀어진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몸은 보이고 만져진다.
그 길을 ‘혼자’ 걷기를 바란다. 날씨가 좋거나 힘이 넘치면 달려도 좋다. 중간에 지치면 앉아서 쉬어도 좋다. 혼자 걷기에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러라고 혼자 걷고 달리는 것이다. 내가 정한 길을 혼자 걷거나 달려본 사람은 알게 된다. 이렇게 좋은 걸 여태 몰랐다니. 연민의 마음이 피어오른다. 어서 알려줘야지.
어느 주말, 집 앞 카페에서 『단순함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컴퓨터 과학자로 MIT 미디어랩 교수와 미국 최고의 디자인 대학 RISD 총장을 역임한 존 마에다가 인생, 비즈니스, 디자인을 스마트하게 해주는 10가지 법칙을 적은 책이다. ‘단순함’처럼 단순한 단어가 있을까. 생각이 정돈되고 말끔해졌다.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책 속 마음에 드는 구절을 담아 짧은 글을 남겼다.
- 세계는 언제나 무너지고 있어요. 그러니 긴장을 풀어요.
단순하게, 느긋하게.
주말의 법칙.
몇 시간 후, 어느 팔로워의 댓글이 달렸다.
단순함을 추구하지만 늘 복잡함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댓글을 달까. 고민하다가 그냥 두었다. 단순함을 이야기했는데 내 생각을 달면 복잡함을 자청하는 것이다.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생각을 달아준 호의를 고마워하면 된다. 지금도 감사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추구’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단순함을 ‘추구’하니까 복잡하게 사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추구(追求)’란 목적을 이룰 때까지 뒤좇아 구하는 것이다. 목적이 있는데 어떻게 단순해질 수 있을까. 목적은 사람을 지배한다. 일을 지배한다. 일하는 사람을 지배한다. 이루면 뭐하나. 목적을 이루면 곧바로 다음 목적이 생겨난다. 단순하지 않다. 목적을 추구하다 보면 경쟁자가 생긴다. 구도가 형성되면 단순해지기 힘들다. 우리가 단순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단순’하다.
그분에게 걷기를 권면한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몸의 능력에 맞는 거리를 걷기를 바란다. 걷기는 야망이나 욕망을 억제하는 몸의 움직임이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거리를 느슨하게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찍 일어난 새는 일찍 일어난 벌레를 잡으면 되고, 늦게 일어난 새는 늦게 일어난 벌레를 잡으면 된다. 느슨함이 해답이다. 느슨하게 걷기를 반복하면 몸이 충실해진다. 몸이 충실해진 만큼 마음이 단단해진다.
걷기는 여유로움이다. 우리가 걷기라는 평범한 행위를 실천하지 못하는 건 바빠서이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루 24시간 중 바쁘다는 핑계로 걷지 못하는 인생은 문제 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바쁘다’는 단어에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일 것이다. 걷기라는 단어는 어떤가. 듣기만 해도 가볍지 않은가. 걷기에 좋은 날씨, 걷고 싶은 길, 가벼운 옷차림과 운동화, 손에 쥔 것은 스마트폰 정도……. 심장병 전문의이자 평생을 ‘달리는 사람’으로 살아온 조지 쉬언은 『달리기와 존재하기』라는 책에서 “간소해질 때 완벽해진다”고 적었다. 간소하면서도 묵직한 한 줄이다.
오늘 나는 성수동 미팅을 핑계 삼아 뚝섬역 일대를 걸으려 한다. 몸은 움직이고 머리는 생각할 것이며 피부는 느낄 것이다. 어떤 순간은 일이고 어떤 순간은 휴식일 것이다. 일과 휴식은 조밀한 시간과 희박한 시간, 그 사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