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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희 북노마드 May 17. 2021

옹졸하고 이기적이고 소심하고 냉철하게



걷기는 혼자 하는 일이다. 동행자가 있을 수 있지만 혼자 걷는 경우가 많다. 혼자 걷기를 청한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걷는 것인데 누군가와 함께하다니……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나에게 걷기란 존재를 잠시 지우는 일이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연결된 세상과 잠시 격리시키는 일이다. 물론 쉽지 않다. 스마트폰은 계속 울린다. 혼자 일하다 보니 스마트폰을 정지시킬 수 없다. 그러나 ‘구별’할 수는 있다. 그것이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면 구별의 기준이 현격히 높아진다. 나는 가급적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긴박한 일은 문자메시지로 오게 되어 있다. 카톡도 까다롭게 거른다. 가급적 걷기를 마치고 먼지를 털고 숨을 고를 때 답한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자유로워진다. 그 기분을 느끼려고 다시 걷는다.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대화하는 것을 즐기고, 내가 공부한 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대신 평소에는 철저히 혼자 지낸다. 집을 나와 들어갈 때까지 혼자 보낸다. 혼자 걷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서점에 가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일한다. 먼 곳을 갈 때는 혼자 운전한다.


혼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혼자 걷지만 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나처럼 걷는 사람, 다른 목적으로 이동하는 사람, 그냥 거리의 사람들. 혼자 커피를 마셔도 카페에는 다른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처럼 혼자 카페를 찾은 사람, 대화를 나누는 사람, 그냥 카페의 손님들. 혼자 서점에 가도 서점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나처럼 혼자 책을 고르는 사람, 시간을 때우려고 서점을 찾은 사람, 그냥 서점의 고객들. 사람을 피하려고 곳곳의 독립 서점을 찾지만 오히려 서점 주인장과 눈인사를 나누거나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나 혼자 헬스장을 찾아도 헬스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세상. 나는 옹졸하고 이기적이고 소심하고 냉철하게 살고 싶다. 생활의 반경을 좀처럼 양보하지 않는 옹졸한 사람, 내 시간을 철저히 고수하는 이기적인 사람, 내 삶의 반경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소심한 사람, 다른 사람의 삶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냉철한 사람.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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