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혼자서
누구나 혼자 일할 수 있습니다.
시대는 달라졌습니다. 지적 노동자의 반경이 넓어졌습니다. 누구나 혼자 일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한 팀, 한 부서, 심지어 한 회사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평일엔 직장 일을, 주말엔 자기 사업을 병행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기준 삼습니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의 귀중함을 말합니다. 귀담아들을 필요 없습니다.혼자 일하겠다는 사람을 걱정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넘지 못합니다. 부모나 가족은 기겁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세상을 의식하지 마세요, 남을 따라가지 마세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마세요. 그들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혼자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혼자서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모레 일을 까맣게 잊어도, 어제 일을 오늘 하지 않아도, 오늘 일을 내일로 미뤄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일을 성과 있게 마무리해도 누구도 칭찬하지 않는다. ‘그’ 일을 매일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면죄부를 준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까 진짜로 출근하지 않는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일을 멀리한다. 그래서 공간이 필요하다. 일하는 공간이 있어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
나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의 아파트 상가 1층 다섯 평짜리 사무실에서 일한다. 작아서 청소도 간단하다. 월 35만 원. 부담이 없다. 간판도 없어서 주민들에게는 개인 작업실로 알려져 있다.
사무실 삼면은 을지로 ‘동명앵글’에서 앵글 책장을 맞췄다. 조립식이라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책상, 의자, 노트북, 조명을 제외한 다른 시설에 돈을 쓰지 않았다. 냉장고를 버렸다. 쓸데없는 간식을 쟁여두지 않는다. 정수기도 없앴다. 사무실이 작아서 다른 것을 사들일 욕망이 원천 봉쇄된다.
지금의 사무실 선택 기준은 통유리창이다. 블라인드를 올리면 환한 햇볕이 들어온다. 블라인드의 수평과 수직이 그늘의 농담을 조절한다. 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온다. 밖으로 나가면 30년 넘은 수목들이 울창하다. 나무 아래 벤치에서 커피를 마신다. 어떤 날은 얼음 잔에 맥주를 마신다. 차분해진다. 일할 마음이 생긴다.
누구나 일하는 공간을 갖고 있다. 공유 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하는 공간은 ‘따로’ 있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최소한의 물건이 놓인 공간은 삼시 세끼만큼 중요하다.
마포의 한 건물 지하에서 커피, 음악, 책을 향유하는 문화인 김갑수는 ‘작업실,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래야만 한다!’라고 답한다. 단호하다. 남들이 땀흘려 일할 때, 회의를 하고 물건을 팔고 공문서를 작성하는 시간에 지하 작업실에서 뒹굴거리며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LP의 면을 뒤집어보아야 한다고 강권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것이 큰 욕심은 아닐 것이다. 일하지 않아도 머물고 싶은 공간. 나는 사람들이 그런 공간을 갖기를 원한다. 피난처 같은 곳, 휴식처 같은 곳.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되기 위해 일하고 그 일을 통해 세상에 나아간다.
누구와 어디서 일하고 있나요? 혼자 일하며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 윤동희. 그의 브런치에는 산문집 『좋아서, 혼자서』에 실린 본문 내용과 함께 원고에는 없는 윤동희만의 또다른 이야기가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나만의 보폭과 나만의 속도로, 흐리지 않고 선명하게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함께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