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혼자서
단순하게 살고 싶습니다.
혼자 일하며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양의 개념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의 질을 따집니다. 내가 되기 위하여 일하고, 그 일을 통해 세상에 나아갑니다. 책을 읽다가 풍경을 보고, 풍경을 보다가 책을 읽고, 일을 하다가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다가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나만의 일이 보일 테니까요.
그런데 왜 출판이에요? 누군가 물어올 것 같다. 물음의 의도를 알기에(누가 책을 읽는다고? 그걸로 먹고살 수 있나요?) 잠시 멈칫한다.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세상, 인구 감소로 미래의 독자마저 사라지는 현실에 출판이라니. 등록된 출판사는 6만 개가 넘고, 하루 200종, 1년에 8만 종이 넘는 새 책이 쏟아지는 터프한 일을 하겠다니. 그것도 혼자서!
왜일까? 나도 궁금하다. 책이 좋아서, 지적 욕망을 갈구해서, 문화적 인간으로 살고 싶어서, 라고 퉁치고 싶지만…… 이 말밖에 할 수 없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진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뿐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지 않았다. 삶을 의식적으로 살지 못했다.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가고, 나를 뽑아준 회사에서 일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나는 책과 미술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다. 당연히 싫어하는 것도 없다. 한 감독을 통해 영화를 바라보고, 한 작가를 통해 미술을 바라보고, 한 뮤지션을 통해 음악을 바라보지 않는다.이 영화는 이래서 좋고, 이 작품은 이래서 좋고, 이 음악은 이래서 좋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분명한 전략으로 삶을 일구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어느 특정한 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사람, 누구를 오마주 삼아 그 일을 하겠다고 결정했다는 사람이 부럽다.
그래도 정성껏 살았다. 나는 매일 서너 개의 전시와 한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사람에게 진심을 다했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구였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만족했을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확신했을까. 분명 미술과 책의 세계로 나를 이끈 무엇이 있었을 텐데 기억나지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시켜서 일하는 게 아니어서 짜증나지 않는다. 혼자 일하는 만큼 불합리한 부분은 즉각 수정할 수 있다. 영 아니다 싶으면 안 해도 된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혼자 전체 과정을 조율할 정도는 된다. 시장 환경이 요구하는 적절한 기획을 하거나 책의 완성도가 괜찮다면 독자들이 지갑을 연다. 제조 인프라(인쇄, 제본)와 유통 인프라(서점)가 잘 되어 있다. 매번 새 책을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브랜드의 피로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내가 되기 위해 일하고 그 일을 통해 세상에 나아간다.
혼자 일하며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 윤동희. 그의 브런치에는 산문집 『좋아서, 혼자서』에 실린 본문 내용과 함께 원고에는 없는 윤동희만의 또다른 이야기가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나만의 보폭과 나만의 속도로, 흐리지 않고 선명하게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함께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