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 쓸모없이 늙어갈까 봐 두려워. 몸이 얼굴이 늙어 가는 것도 두려워. 내 곁의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고 얹혀사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
한참을 그렇게 흐느낀 다음에 S가 입을 열었다. 용모가 어여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가장 큰 형벌은 아마도 늙어감일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인생은 공평할지 모른다. 그 혹은 그녀들이 젊은 시절 아름다움을 구가하면 할수록 그들의 노쇠는 두드러지게 된다. 늙어감이 공평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때야 인간의 내면이 밖으로 배어 나오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 위즈덤하우스
어느 날 거울을 보았다. 주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슬펐다. 직장에서 20대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도 저 때는 이뻤는데... ... 그때는 왜 몰랐을까?'생각하며 가슴 한편이 시려왔다.
4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고, 정신없이 흘러온 지난 세월처럼 시간이 쏜살같이 도망갈 것 같았다.금방 50대, 60대가 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나의 이삼십 대보다 얼굴에 생긴 주름 빼고는 지금이 다 좋았다. 또한 얼굴 주름도 40대 중반치고는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가장 아름다웠던 20대와 비교하니까 슬펐던 거지.
물론 여자로서 아름다움이 서서히 저물어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니 담담히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쁜 것들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다. 이쁠수록 가슴이 더 시리겠지. 훗!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결국 추상적인 개념이며 주관적이지 않을까? 대학교 때 과 친구가 고졸 남성을 사귀어 친구들이 모두 의아해한 적이 있다.
내 남자친구는 자신이 고졸이라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아. 그래서 더 매력적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친구가 사랑에 빠진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나의 노화를 스스로 위축되지 않고 받아들이면 된다. 오히려 나이들 수록 내면이 밖으로 나온다니 지금부터 진짜 게임이 시작되는 거 아닐까? 젊어지려고 발악하지 않고 내 나이에 맞게 잘 꾸미면 된다. 진짜 중요한 것은 표정, 언어, 분위기겠지.
나이 들어가지만 앞으로도 아름다워질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자. 모든 것은 나부터 시작하니까 말이다.
휴우~ 가장 나를 괴롭히던 노화가 이젠 해결(?) 되었다.
이젠 나이 드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 수십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고통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감정적 완충공간이 생긴 것이다.
"예전에도 일이 그렇게 꼬이더니 어떻게 해결되기는 하더라. 좀 더 기다려보자"
어릴 때는 자극이 오면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이 아팠는데 이제는 굳은살이 배겼는지 예전보다는 덜 아프다. 또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고통을 피할 수 없으며,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 또한 삶이라는 것도 알 게 되었다.
두 번째는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점이다.
30대까지는 전력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정신없이 달렸다. 삶은 나에게 끊임없이 숙제를 내려 주었다. 주어진 숙제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삶이 왜 이렇게 가혹하나 싶었다. 그 덕에 지금의 여유를 누리게 되었으니 지금은 감사하다. 역시 공짜는 없어.
예전에는 파랑새를 쫒 듯 행복을 특별한 이벤트에서 찾았다. 예를 들면 여행 같은 거? 하지만 지금은 거실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빛,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 내 마음을 흔드는 책의 한 구절처럼 사소한 것이 진짜 행복임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즉 나의 고통을 삶의 디폴트 값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일상에 작은 행복들이 널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런 게 다 나이를 들면서 알게 된 것이니 어찌 내 나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쩌면, 지금 사십 대라서 이런 생각이 드는 지도 모르겠다. 아래 글처럼 40대가 죄와 가장 어울린다는 것은 삶의 경험이 어느 정도 쌓였지만 신체는 그리 많이 노화되지 않은 상태라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모든 것의 최정점에 도달하는 시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