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치료프로그램 준비하면서 교안에 태클 걸기

새로운 도전의 중요성

by 라온써니

수업 준비를 위해 독서치료 프로그램 교안을 보았다. 작년 한 해 동안 올해 운영을 목적으로 도서관 직원들이 열심히 만든 결과물이다. 나는 작년에 디지털 부서에 있었으므로 프로그램 개발은 하지 않았지만 이 교안으로 이용자 대상으로 수업을 해야 함은 물론이고 사서를 대상으로 운영 교육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프로그램 진행의 목적으로 ‘나이 들어가는 삶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높인다.’다.

‘음..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누구나 겪는 거지. 나도 제외는 아니고.. ’

왠지 흥미가 가는 주제였다.

4차시 수업 중 우선 한 차시 수업만 살펴보았다.

그림책 ‘틸리와 벽’이 수업 교재였다.

귀여운 생쥐들이 주인공이다. 아무도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지만 오로지 틸리만이 벽 뒤의 세계에 호기심을 품는다. 틸리는 벽 오르기, 못으로 구멍 뚫기, 벽을 따라 걷기 등 벽을 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우연히 벽 근처에서 굴을 파는 애벌레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벽 밑의 땅을 파는 방법으로 벽 너머의 세계에 도착한다.

그림책을 읽으며 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틸리의 도전정신은 칭찬할 만하지만 벽에는 관심이 없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생쥐들은 과연 틸리보다 못한 것일까? 새로운 도전을 하여 세상을 바꾸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만족을 느끼며 주변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 모두 각자의 개성으로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끊임없이 준다. 급변하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쉬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 결과 나와 주변을 천천히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잠시 편하게 휴식하는 작은 여유조차 빼앗겨 버린다. 나의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나는 어디로 어디 가고 있는지 되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조급하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것 같다.


최근에 읽은 <가치 있는 삶/마리 루이>에서는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으며 욕망이 인간 삶의 원동력이고 진짜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존적 혼란, 즉 불안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으며 이 근본적인 취약함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만 동시에 삶이 지루해질 틈이 없도록 창의성을 맘껏 펼칠 기회를 준다. 결국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고 세상과 완벽하게 조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결코 실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되면서도 슬프기도 했다.

‘정녕 인간에게 만족과 행복은 없는 것일까?’

인간의 이런 태생적인 문제에 사회적 압박까지 더해지고 있는데 독서치료 프로그램 수업조차 새로운 시도를 하라고 꼭 부추겨야 할까?’

갑자기 손 번쩍 들고 ‘저는 이 수업에 반대입니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수업에 관련하여 민원을 들어오면 해명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지금 자체 민원을 넣고 있는 나는 제정신일까 ㅎㅎ?’

또 다른 수업 교제 <일단 해보기의 기술/톰 밴더비트>는 어느 날 딸의 학원이 끝나기를 복도에서 가만히 기다리다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그만하기‘로 결심한 이후 체스, 합창, 서핑 등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배우는 인생 교훈에 대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겪지 못했던 경험,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활기를 얻는 저자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지만, 중년의 나이에 서핑을 하다 허리를 다쳐 디스크로 고생하는 것을 보니 그의 삶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싹 사라졌다.

이것저것 찔러보기식 취미활동은 내 스타일이 아니긴 하다. 어쨌든 나의 삐딱선은 멈추지 않았고 친한 직원에게 수업 교안에 동의할 수 없어 수업을 도저히 진행하기 어렵겠다고 하소연했다.

조용히 나의 말을 듣던 직원은 최근에(40대 중반) 맥북에 도전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타벅스를 자주 가는 직원은 단지 ‘간지’ 난다는 이유로 맥북을 구입했다. 하지만 기존 노트북과 전혀 다른 구동방식에 당황했고, 처음에는 키고 끄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적응의 어려움은 상당했지만 지금은 맥북이 자신의 가장 아끼는 아이템으로 너무 사랑스러워 애완동물처럼 애칭도 붙여주었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이라 망설였지만, 이런 소소한 시도가 삶에 큰 활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의 머리가 ‘팡’깨지는 듯했다. 합창, 서핑같이 거창한 도전이 아니더라도 공원 달리기, 예쁜 컵에 하루 10분 차 마시기 등 생활 속에 소소한 도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인생의 여정을 마칠 때까지 작은 모험들을 추구하고 산다면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갑자기 예전에 내가 했던 새로운 시도가 떠올랐다.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며 별 취미 생활도 없던 나는 큰 맘먹고 2019년 유료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되었고, 독서 모임은 쓰기 모임을 낳고, 쓰기 모임은 브런치 가입을 낳고, 브런치 가입은 출간 제의를 낳아 여차여차하여 올해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다. 어쨌든, 나도 처음에는 작은 도전으로 시작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었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손에 들고 있는 새로운 도전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에 애정이 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시도해 보고 꾸준히 해본다는 것, 즉 나이 들어서도 이유 없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백세시대에 참으로 든든한 정신적 자산이다. 갑자기 착실히 준비하여 수업을 잘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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