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이 삶에 대한 사랑과 살아있는 것에 대해 끌리는 마음을 현대인의 핵심 문제로 삼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프롬은 이미 삶을 사랑하며, 살아 있다고 느끼는 능력이 점차 줄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실감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활동적일 수 있는 자기 나름의 힘과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가/ 에리히 프롬 서문에서
삶은 정신없이 바쁘다. 월급을 받기 위해 직장에 상당한 시간을 바치고 있고, 그 외 시간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생존을 위한 빨래, 요리, 설거지부터 벗고 다닐 수는 없으므로 옷 신발 등도 꾸준히 사야 하고, 머리 자르기, 염색 등... 할 일을 줄로 세우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언젠가 딸아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나 이제 중3 되는데 고등학교 과학 선행하라고 왜 말 안 하는 거야? 다른 엄마들은 이미 다 시키고 있다고! 엄마는 내 성적과 공부에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야?”
“원하면 과학학원 보내줄게. 학원이 엄마보다 더 전문가잖아. 미안해.”
학원 보내준다는 말에 딸의 화가 가라앉아 다행이지만, 딸의 공부를 봐주지 않더라도 나는 이미 충분히 정신없다. 나의 딸의 학업에 대한 무관심은 아직 중학생인데 하는 안일한 마음과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해진 결과이긴 하지만 좀 심했나 싶어 찔끔했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학군지라 과열 양상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왜 이리 신경 쓸 일이 많을까?
이렇게 내 앞에 떨어지는 미션 클리어만 하다가 내 인생 종 치는 거 아닌가?
에리히 프롬은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실감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활동적일 수 있는 자기 나름이 힘과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지만 누구는 멀어지고 싶어서 멀어지나? 가까워질 시간과 여유가 좀처럼 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멀어지지.
소소하게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이쁜 구름 사진을 찍을 마음의 여유조차 누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렇게 주변의 아름다움을 둘러볼 여유와 능력이 사라진다면 그야말로 인생은 해야 할 일의 무한 루프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머릿속에 성능 좋은 모터처럼 바삐 돌아가고 있는 “해야 할 일”을 어떻게 일시정지시킬 것인가는 싶지 않은 과제다.
어느 책에서 인생에는 1. 중요하고 시급한 것(업무), 2.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것(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독서 글쓰기) , 3. 중요하지 않고 시급한 것(집안일), 4. 중요하지 않고 시급하지도 않은 일(TV 보기, SNS)이 있다고 했다.
나는 시급한 1, 3번을 우선 처리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 2번으로 직행하면 좋으련만 습관적으로 4번으로 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직장에서부터 시작된 회의감은 생활 전반으로 번져 탈출구를 모색했으나, 회사를 그만둘 수도 서울을 떠날 수도 없는 상황에 갇혀버렸다. 그러나 힘든 근무 시간을 마친 후 취미생활이라는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구원했다.
우리에겐 애쓰지 않아도 사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는 저자는 전공이나 먹고사는 일과 무관한 것을 하니 해방감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무한 경쟁시대에 업무 역을 쌓아도 부족할 판국에 먹고사는 것과 무관한 것을 아무 결과물 보장 없이 꾸준히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고 순간순간 예상 밖의 걱정거리들이 튀어나온다. 이렇게 복잡한 현실에서 잠시 탈출하고 나와 세상과의 관계 스위치를 잠시 오프 하면서 쉬는 게 나도 모르게 4번(중요하지도 않고 시급하지도 않은 일)으로 가게 되는 원인이 아닐까 싶다. 즉 2번(중요하고 시급하지 않은 일)으로 갈 에너지가 고갈된 것이다.
어쨌든 이 저자는 시간을 쪼개어 자기가 하고 싶은 취미(그리기)에 매진해서 미술 전시회도 열고 정식 작가까지 등록하였다. 이렇게 운 좋게 결과물이 나오긴 했지만 만일 그렇지 못했을 때 ‘자본주의 효율성’이라는 굴레에 익숙한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결과 없는 취미생활을 ‘삽질’이 아닐까 하는 고뇌를 이겨내고 꾸준히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인 2번(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2번을 선택했을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나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는 아무 목적 없이 좋아서 한 ‘읽고 쓰기’지만, 올해 출간으로 연결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계속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간 기울인 노력에 비해서는 기가 막히게 운이 좋은 책 출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읽고 쓰기를 유지하면서 가끔 이거 할 시 간에 다른 것(투자 공부, 아이 입시 연구, 업무 관련 지식 습득 등)을 더 해야 하는 거 아닌가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지만 당장 도움이 될 만한 것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은 항상 나를 쪼여온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삽질이든 뭐든 일단 계속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단단한 씨앗처럼 자리하고 있다. 혹시나 마음이 흔들릴까 봐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 프롤로그에 ‘앞으로도 계속 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물론 언젠가 또 다른 출간과 네이버 도서 분야 인플루언서 같은 막연한 결과물을 기대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쓰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나에게 시급하지 않지만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읽고 쓰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큰 성과물은 없더라도 좀 더 나다운 사람, 좀 더 단단한 사람, 좀 더 행복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독서치료실에서 ‘치료’에 부합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셀프 치료하고 음습한 기운이 아닌 좀 멀쩡한 기운을 풍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책을 읽고 치유적 읽기· 쓰기· 말하기를 하면서 이상한 사서가 미친 짓으로 치료가 아니라 상처를 주면 안 되지 않을까?
‘도서실에 있어요’라는 책에서는 사서가 방대한 독서력과 사람을 보는 통찰력, 그리고 인생에 대한 지혜로 이용자의 삶을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신박한 책 추천을 한다. 나야 뭐 그런 역량은 꿈도 못 꾸겠지만, 능력이 있건 없건 간에 앞으로 개인 맞춤형 책 추천과 독서치료 프로그램 운영 등 관련 일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를 성장시키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걱정은 심히 되지만, 어쨌든 우당탕탕 넘어지면서 어떻게든 헤쳐나갈 것이다. 앞으로 독서치료실에서 봄·여름·겨울·겨울의 희노애락이 기대되는 이유다. 그 기록을 꼼꼼히 남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