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고 싶다!
자려고 누웠으나 머리에 ‘사서 연수’라는 빨간 불이 켜지며 눈이 번쩍 떠진다. 올해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할 사서들에게 내용 소개 및 운영 팁에 대한 연수를 해야 하는 데 압박감이 컸나 보다. 공공도서관과 학교에서 바쁜 일정을 쪼개고 오신 분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마음에 무거운 돌덩어리 하나가 가라앉는 느낌이다.
예전에 내 자리에 계셨던 분이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다.
“나는 여기 있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이 사서 대상 연수나, 청소년,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귀한 시간을 내서 오신 분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었어요. 어린이, 청소년 수업할 때는 멀리서 도서관까지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평소 수업을 잘하신다고 소문나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참, 매사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네. 걱정도 팔자여~~ 뭘 그리 큰 도움을 줄 생각을 해. 사람 능력 다 비슷비슷한데, 몇 시간 수업으로 누가 누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겠어? 과한 욕심이지.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오신 분들이 그 시간을 따분하지 않고 즐겁다~~이렇게 느낄 수 있으면 성공이지 뭐’
그분이 쓸데없이 예민하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뭐든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다. 지금 내가 그렇게 이해 안 되는 눈길로 바라보았던 그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공포에 떨고 있는데 생각지 못한 좋은 기회가 왔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컨닝의 기회가 온 것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프로그램을 연합 개발, 운영하는 도서관의 체험연수를 참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올해 그 프로그램의 외부 개발 위원이기도 하다.
나도 우리 프로그램 체험교실 수업을 해야 하니 의자 배치, 간식 준비, 출석부부터 소개 멘트, 모인 분들을 아이스브레이킹 노하우, 진행 방식 등 예전에 참여할 때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그렇다 보니 아무도 메모하지 않을 때 나 혼자 열심히 메모하고 다른 사람이 메모할 때는 조용히 있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원형 탁자였는데 앞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다른 분들은 그 프로그램을 올해 진행해야 하니 수업내용에 관심이 많지만 나는 전체적인 체험교실 운영방법, 강사의 태도, 진행 방식에만 눈이 간 것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더니 입장에 따라 같은 수업도 전혀 다른 포인트로 접근하게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갑자기 TV 인문학 강좌에서 들은 구글 글라스 실패 사례가 떠올랐다. 인간의 눈은 밖의 대상을 거울처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카메라가 아니다. 내가 의미를 주는 것들이 취사 선별에서 들어오는 살아움직이는 시선인데, 구글에서 이 특성을 무시한 채 기계적으로 눈앞의 정보를 계속적으로 보여주어 실패했다고 했다. 즉 인간 고유의 특성을 간과하고 기술력 개발에만 힘쓴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 ‘나’라는 거름망에 걸려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리히 프롬이 쓴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가>라는 책에서 사람이나 사물을 충분히 오래 바라보기만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는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어떤 것을 얻어내려 하지 않고 그것을 진정으로 바라봐야 하며, 진정으로 고요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없고 바쁜 나는 얼마나 소중한 것을 많이 놓치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돈 들여서 해외여행 갈 생각하기 전에 내 주변의 것들을 좀 더 바라보고 진정성 있게 알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주변의 것들에 대해 매일 감탄할 수 있는 마음 갖고 싶다. 그 기술을 내면에 장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삶이 다채로워질까, 나이 들어도 마음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으로 독서치료 프로그램과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정말 기똥찬 프로그램이 나올 텐데... ...
체험 연수를 마치고 올해 개발 위원들은 남아서 내년에 운영할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 회의를 했다.
“매 차시 마다 상당한 분량의 책이 있어서, 어린이들이 부담을 느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작년에 운영해 본 결과 오히려 아이들이 책이 시시하다며 더 두꺼운 책을 원했어요.”
“같은 나이라도 독해력이 천차만별이라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네요.”
“4차시를 하나의 주제로 갈까요? 각기 다른 주제로 갈까요?”
“운영시간은 몇 분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지 여러 도서관에서 온 개발 위원들은 머리를 쥐어짰다. 나는 여기 독서토론 프로그램 개발(어린이 대상)의 외부 위원으로 왔지만 다음 달에는 또 다른 외부위원들을 모시고 우리 도서관이 주체로 독서치료 프로그램(성인 대상)을 개발해야 한다. 곧 비슷한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나는 총괄 담당자의 멘트, 준비 자료, 회의 진행 방식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프로그램 개발 총괄 담당자는 처음 해봐서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다른 기관의 비슷한 상황에 한번 참여하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회의 끝에 다음 달까지 각각 주제 하나씩 정해오고 그와 관련한 책 3권을 가져와서 다시 한번 논의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주제와 상관없이 각자 추천하는 책 3권을 추가로 가져와 다양한 방안을 함께 연구해 보자고 했다.
평소 내가 읽고 싶은 책(성인 대상)만 주구장창 보았지 어린이책은 생소한 나는 숙제를 받아들고 걱정이 앞섰다. 또한 우리 성인 독서치료 프로그램도 주제 정해야 하는데 다음 모임 전에 외부위원들에게 좀 생각해 보시라고 메일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올해 운영할 사서 대상으로 독서치료 프로그램 체험연수도 진행해야 하고, 어린이 독서토론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자료 준비도 해야 하고 내년 독서치료 프로그램도 개발해야 하고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급한 마음부터 내려놓으려 노력해야겠다. 고요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사물을 볼 수 있다고 에리히 프롬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