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 회의

잘할려는 부담감아 물럿거라~

by 라온써니


처음 하는 일이라 걱정이 앞섰다. ‘그냥 어떻게든 흘러가겠지’라고 생각하며,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의지와는 달리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많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던 것 같다.


하필 프로그램 개발 회의가 있는 날이 올해 프로그램 운영 가이드 연수 접수 첫날이라 아침부터 관련 문의가 많았다. 생각지도 못한 문의에 당황하며, 이미 개발 회의로 긴장상태였던 나의 마음은 평정심을 잃기 시작했다. 전날 잠을 못 잔 것도 한몫했다. 사실 개발 회의 걱정으로 잠 못 잔 것 아니고 다른 이유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한마디로 그날 아침부터 정신줄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흩어지는 정신줄을 한 가닥 한 가닥 겨우 부여잡으며 회의를 위한 자료 준비, 우리 도서관 기념품 챙기기, 간식과 음료, 안내판, 출석부 등을 준비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 잘 웃고 쾌활하고 말도 잘한다고 하던데, 이상하게 나이 들수록 혼자 있는 게 좋고 누구랑 대화하는 것에 긴장도가 올라간다.


흩어지는 에너지를 나의 안쪽으로 모아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차분히 인식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나의 정신은 수시로 탈출을 시도한다. 내가 가끔 말이 빨라지면서 횡성수설하게 되는 이유다.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어떤 금전적 수당도 없이 참여해 주시는 외부위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게 회의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결정된 사안들에 대해 각자 개인 시간을 짜내서 연구와 조사를 해야 한다. 이 일에 애정이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동내 책방을 동경하는 이유는 이윤만을 위해서는 운영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곳에 있는 분들은 책에 대한 사랑과 철학이 넘쳐날 것 같다. 이처럼 우리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 위원들도 여기에 애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있기에 오신 분 한 분 한 분이 너무 소중하다.


오늘은 내년에 운영할 프로그램의 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꺼내보니 다들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내가 회의 진행을 하는 데 역시나 긴장으로 인해 오전에 놓은 정신줄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고, 수면 부족이 겹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횡성수 설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뜨끈끄끈 달아오르지만, 처음은 원래 못하는 거라고 내 마음대로 나를 위로했다. 오은영 박사님이 자기 전에 매일 자신을 탓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했으니 오늘의 나의 부족함을 내가 나에게 용서한다. ㅋㅋ


어쨌든 90분 수업 4차시를 개발하기 위해 큰 주제와 세부 주제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우리는 3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신기하게도 머리 터지는 가운데에서도 회의 중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어떤 분은 발령이 나서 평생학습 관련 부서에 발령이 나서 책은 구경도 못하는 데 여기에 와서야 책과 관련된 일을 하니 숨통이 트인다는 분도 있었다.


독서치료 프로그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색깔이 드러났다. 프로그램 주제를 떠올리기 전에 내가 책을 통해 힐링을 얻는다면 어떤 부분을 원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삶의 방향성에 고민하고 계시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은 상실에 대해, 다른 분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다고 했다.


격한 토론 끝에 큰 주제를 정했고, 4가지의 세부 주제도 가닥을 잡았다. 서로 파트를 나누어 책과 프로그램 방향에 대해 연구해 보고 한 달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집에 와서 주제에 관한 책들과 강연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많이 알아보고, 노력한다고 될 문제가 아닌 듯했다. 내가 평소 그 주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극복해 본 경험이 있어 어떤 철학이 있어야 진정성 있는 프로그램이 나올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지금도 여러 고민에 쌓여 발버둥 치는 치료가 제일 먼저 필요한 사람이기에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철학을 가진 위인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좋은 삶을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는 것은 자신할 수 있다. 즉 치료가 완료된 사람은 아니지만 치료를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 즉 치료가 진행 중이기에 조금은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또 한 번 나를 위로했다. (벌써 두 번째 위로인데 너무 합리화가 심한건가?ㅎㅎ)


회의를 마치고 퇴근한 후 나의 정신은 나의 밖으로 탈출하여 시체가 되긴 했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소진되는 느낌과는 다른 색깔이었다. 힘든 노동을 하고 삭신이 쑤시는 게 아니라 기분 좋게 운동하고 노곤노곤한 느낌이랄까?


다음날 쉬는 날이라 압박감에 교보문고 가서 책들을 이잡듯이 훑어보았다. 사실 이건 명백히 초과근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보니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지 하면서도 쉬는 날 이 지랄하는 걸 보니 말로만 그런가 보다. 회의 중에 누군가 내가 작가라고 잘할 거라고 농담 삼아 말씀하셨는데 그런 시선이 좋으면서도 많이 부담스럽다. 과연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좋아하는 일을 겨우 맡았는데 부담감으로 얼룩져버리는 것 같다. 스트레스는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이고 항상 즐겁게는 할 수 없겠지....... 만,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먹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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