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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써니 Mar 25. 2023

삶에 여백을 두어야

아무말 글쓰기는 행복해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았다. 그런 나를 칭찬한다. 하지만 땅에 차악~ 발을 붙이고 있는 느낌이 아닌 외부적 어떤 공기에 밀려 떠나다는 느낌,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로 마구 버무려져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아닌 뭔가 미션을 잘 수행하는 최적화된 기계로 사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무엇에 쫓기듯이 정신없이 한다.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서 항상 미리 해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나는 요즘 내 마음의 노란 적신호가 켜져 있는 것을 느낀다.

며칠 전 옆자리 선생님이 나를 보고 너무 피곤해 보인다고 말을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 내어 아무 일도 없었지만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 어제 아침을 챙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져 옷 정리를 하고 그러다 보니 사야 할 옷이 생각나고 집 근처에 매장이 널렸지만 쇼핑하는 것을 피곤해 하는 나는 인터넷으로 광클하여 주문했다. 그다음 빨래를 돌리고...

쉬려고 휴가를 냈는데 여전히 나의 수행 효율을 높이려는 내면에 장착된 모터는 여전히 가동 중이었다. 어떻게든 꺼야 한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을 갔다. 한강 초입까지 달리다가 왔는데 이제야 시끄러운 모터가 꺼지고 나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요즘 힘들다고 하기가 참으로 부끄럽다. 작년 하반기 처절한 나의 생활을 생각하면 지금은 꽃밭을 거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힘들었던 시절이 지나간 게 몇 달 안되었기에 양심상 나의 기억 한편에 아직은 잘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작년 하반기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정신이 없었기에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올해 근 3개월은 내가 스스로를 들들 볶았다는 게 문제다. 그건 나의 '욕심'이 원인이겠지. 직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힘들게 맡았기에 이왕이면 잘 해내고 싶은 마음, 또 1월에 책 출간을 하면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 운 좋게 책도 내었으니 이 분야를 한번들이 파보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도 있었었던 같다. 

이런 욕심과 바램으로 나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알뜰살뜰히 썼다. 출퇴근 시간과 설거지 등 집안일할 때는 오디오 북을 듣고 독서치료실 이야기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항상 글 생각을 했다.  도서관에서 해야 하는 서평을 잘 쓰기 위해 틈틈이 서평 필사 도 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항상 힘들었던 건 아니고 물론 그중 즐거움과 얻는 것이 많긴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짜증이 확 일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왜 이런 마음이 들까? 

어제 자전거를 타면서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한 머릿속의  모터를 끈 후 집에 와서 명상음악을 들으면서 아무도 없는 거실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너무 행복했다. 이렇게 나는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인데 왜 그리 미친년처럼 달려왔을까? 무엇을 위해서? 

지금도 이렇게 무용한 일기를 쓰니 너무 행복하다. 일기도 안 쓰던 내가 몇 년 전  글쓰기를 시작할 때 이런 아무 말 대잔치 글을 쓰면서 글쓰기의 매력에 빠졌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 한 주제로 브랜드화하여 글을 써야 가치가 올라간다는 말을 듣고 도서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었다.  다른 것에 비해 그 도서관 이야기 쓰는 것이  재미는 없었지만, 그 달랑 몇 편의 글 때문에 출간 제의가 오는 행운을 누렸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하니 지금 나의 독서치료실 이야기도 꾸준히 쓰고 나중에 좀 더 수정해서  전자책을 만들든 브런치 북에 응모를 해보던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할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어떤 책에서 인간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쉬는 것에도 에너지를 써야 한다니 역설적이지만 휴대폰으로 TV로 무의미한 인간관계로 도망가는 것이 아닌 나를 만나는 진정한 쉼을 갖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미친 듯이 해야 할 일을 해치우고 싶은 조급증을 유발하는 머리의 모터를 끄는 것이 관건이다.

 모터가 켜지면 말도 빨라지고 말실수도 많이 하고 한마디로 정신이 없어진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누가 나에게 다른 사람 흉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맞장구치고 후회한다. 그렇게 살기 싫은데...

정신없이 할 일을 해치우다 보면 흥분상태가 되고 현재에 차분히 정착을 못하는 것 같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니 어느 상황에 처했을 때 아이한테도 후회될 말들이 내 입에서 나가기도 한다. 따뜻한 커피향도 못 맡고 카페인 섭취를 목적으로 그냥 원샷 해 버리고,  목적지를 향하는 마음 때문에 길가에 아름답게 핀 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다.

힘들게 모터를 껐다가도 사무실에서 나를 자극하는 한 통의 전화에, 아이의 한 마디 말에 나도 모르게 모터가 켜진다.  모터를 켜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끌 수도 있는데...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라는 말이 이런 것일까?. 심호흡을 하던 하늘을 바라보던 모터를 팍~ 꺼버릴 수 없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미친 듯이 저절로 작동하는 모터가 나에게 일을 빨리 많이 하는 효율성도 주었지만 이제는 수시로 끌 수 있도록 안간힘을 써야겠다. 이 모터를 끄면 잃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더 소중한 것을 과감히 정지하려고 한다. 

지금처럼 아무 효용 없는 글쓰기를 더 많이 쓰도록 애를 써야겠다. 욕심을 내려놓고 더 행복해지도록 힘써야겠다.  나에 대한 욕심을 딸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겠다. (요즘  딸에게 핸드폰 시간을 줄이고 잠을 많이 자라고 실랑이 중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생각이고 본인이 피곤하고 힘들면 알아서 하겠지. 딸을 나의 기준으로 척척 움직여 주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딸은 스스로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갈 것이다.)

나는 할 일 없이 거리를 거닐고, 자전거 타고, 혼자 명상음악을 들으며 멍~을 때려야 에너지가 충전되고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하늘을 많이 보고 꽃을 많이 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많이 웃어야 겠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조금 더 못나지더라도 나의 관점에서 조금 더 행복한 사람이 돼야겠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더 여유를 가지려는 마음을 품을 수 있을 정도의 삶의 여백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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