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의 중요성
연합 독서토론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다른 도서관으로 출장을 갔다. 날씨도 너무 좋고 점심시간을 끼고 있어서 점심을 출장 갈 도서관 근처에서 먹은 후 주변을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상큼한 기분을 간직하고 오늘도 독서문화기획자라는 분이 얼마나 신선한 수업을 해주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프로그램 개발 총괄 담당자가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선생님께 의뢰하면 그에 대한 수업을 해주시고, 수업 후 개발 위원끼리 모여서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이번에는 주제 도서에 대해 각자 논제를 미리 뽑아오고 그것을 비교 대조하면서 어떤 것을 선정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수업의 의뢰 내용은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할 때 상호 라포 형성을 위해 어떤 사전 활동이 있을까?’였다.
역시 선생님은 신박한 답변을 준비하셨다. 본인은 사전활동을 기획할 때 진행자와의 라포 형성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고 하셨다. 다만 어떻게 하면 학생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만 하신다고 했다. 우리 프로그램 대상은 초등 고학년에서 중·고생이라 사춘기에 돌입한 아이들과 무리하게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하셨다. 단지 진행자는 저 사람 앞에서 어떤 말을 해도 된다는 ‘안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하셨다.
즉 ‘내 편’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고 학생들이 먼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셨다. 또한 토론이나 활동 시 본인(진행자)의 존재감은 최대한 낮추고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올려놓고 그들의 무대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평소 철학도 덧붙여 말씀해 주셨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여행자의 자세를 취한다고 하셨다. 여행을 할 때 스쳐 지나가는 만남에 대해 깊이 친해지지 않아도 호의를 보일 수 있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에 집중하면서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지 않냐면서 자신은 평소 인간관계도 여행자의 마음으로 임하며, 친해지는 데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셨다.
그 후 아이들에게 책 읽는 줄거움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말씀을 이어가셨다.
초등 5학년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2021년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스마트폰, TV, 인터넷 등(23.7%), 학업으로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21.2%),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19.1%), 책 읽기가 싫어서(16.2%), 읽을 만한 책이 없어서(5.8%) 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책 읽기가 싫어지는 요인으로 대부분 강요된 독서라는 대답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수업을 진행할 때 책과 함께하는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는데 집중한다고 하셨다.
한 번은 독서캠프를 진행할 때 읽기, 쓰기, 토론은 하지 말아 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했고, 아이들이 책과 함께하는 즐거운 추억을 쌓았으면 하는 본인의 신념과도 일치하여 열심히 준비하셨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잘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을 미친 듯이 보았으며,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과 활동들을 책과 연관 지어 개발했다고 하셨다. 특히 예능 진행자의 기법과 텐션을 주의 깊게 보면서 자신이 녹여낼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사전 활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가장 비싼 책 찾아오기, 가장 페이지 많은 책 찾아오기, 책 제목이 가장 긴 것, 혹은 작가 이름이 가장 긴 것 찾아오기 활동 후 자신이 가져온 책 아는 척하기 배틀 게임이 기억에 남았다. 모르는 책에 대해 아는 척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함께 고민하면서 책을 파악할 때 작가, 문제의식, 목차 구성, 주요 키워드 등을 참고할 수 있다고 힌트를 준다.
아이들이 책은 싫어해도 책에 스며있는 지적인 이미지는 좋아한다면서 책과 함께 하는 나의 멋진 포즈 사진 콘테스트를 연다거나 책은 싫어해도 책 선물을 좋아한다면서 오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책을 선물하면 읽으라고 권유 않아도 그중 한두 명이라도 그 책을 펼쳐보는 학생이 생긴다고 했다. 이런 모든 활동의 가장 중요한 방점은 ‘재미’다.
유치원생이나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는 책놀이를 하면서 왜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에게는 독서토론 등 진지함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 버렸는지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물론 생각이 커졌으니 진지한 생각 나눔도 중요하겠지만, 오히려 책과 멀어지는 사춘기 아이들을 위해서는 책과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의 참신한 발상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으며, 이런 신박한 발상은 아이들이 책을 정말 좋아했으면 하는 진심과 사명감이 그 원인일 것으로 추측한다. 어떤 일을 할 때 방법적인 HOW보다, 그것을 왜 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
그러한 근원적인 질문에 자발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도 진정성을 가져야겠다고 수업을 들으며 생각했고 순간 의욕이 샘솟았으나, 각 위원들이 가져온 논제들을 대상으로 어떤 것을 할 것 인지 논의하는 프로그램 개발 회의에서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경험을 하면서 에너지가 바닥을 쳤다. 점심에 도서관 산책을 하면서 올라갔던 에너지마저 온 데 간 데 사라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닌지 다른 분도 당 떨어진다면서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서 드셨다. 역시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있다. 아이들에게 책의 즐거움을 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책 토론 프로그램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셨다는 선생님이 다시 한번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