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고 셀프 독서치료
니체는 인내로 상징되는 낙타에서 자유와 힘의 사자로 최종적으로는 순수한 아이로 정신이 성숙해진다고 했다. 낙타에서 사자로 힘이 세지다가 마지막은 더 힘센 무언가가 나올 것 같은데 갑자기 어린아이라니... 세상만사 초월하고 득도한 것 같은 성직자의 얼굴에서 오히려 천진난만한 아이의 표정이 엿보이는 것은 그래서일까? 하지만 생각 없이 헤벌쭉 한 것과 낙타와 사자를 거쳐 무의 경지에 이른 해맑음은 비슷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형상일 것이다. 그래서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건 여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알고 싶어서 애태우는 나 자신, 인생, 미래, 신, 우주 등도 미약한 인간이 파악하기에는 너무 크고 입체적이라고 한다.
어차피 이런 것들을 깨닫기는 글렀으니 산책이나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존재의 휴가를 즐기라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이런 것들을 깨닫기 위해서 애쓸 만큼 애쓴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인생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감도 안 잡히는 나에게 죽기 전까지 헤매며 괴로워만 할 것 같은 나에게 유한한 인생 시간 낭비하지 말고 현재를 살라고 뒤통수를 한 대 치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저자의 일침에 나는 뜻밖의 해방감을 느꼈다.
이게 뒤통수 몇 대 맞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거리는 얼마나 멀고 험한지. 그래도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그걸 아는 것과 전혀 모르고 폭주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챗 GPT의 등장, 집값 변동, 환경오염 등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어수선한 하루하루를 헤쳐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나다움을 찾아야 한다’, ‘나만의 세상의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이중의 압박이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데로 산다면 그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노력해 볼 만큼 애쓰고 난 후 최종 결론이라면 같은 모습이지만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고 했다. 나도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편안히 시간을 보내고 주변을 주의 깊게 찬찬히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상태를 꿈꾼다. 또한 저자처럼 인생의 고통과 허무를 수용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상태를 원한다.
저자는 궁핍하면 생존이 삶의 목적이 되고, 타인의 인정에 목마르면 타인의 인정을 얻는 것이 목적이 되니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목적 없이 사는 것도 허락한 환경과 정신적 내공이 필요한 것이다. 나도 전투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물리적 환경과 정신적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자는 쉬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라면서 악착같이 쉬고 취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고 한다.
나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은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열심히 살라고 나를 다그친다. 방향을 못 잡고 요동치는 나의 마음을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한 발버둥은 그만두고 그냥 삶 자체를 살아내는 방향으로 이끌어 보려고 한다. 천진한 이이처럼 삶 속에서 순수하게 존재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