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세가 입금되다.

출간일기 7

by 라온써니

선인세가 입금되었다. 이제야 진짜 계약을 했다는 게 실감이 난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사브작 사브작 놀이 삼아 했던 글짓기가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돈을 받았으니 취미로 글을 쓸 때와는 다른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쓰고 싶다. 하지만 글쓰기는 공부랑은 결이 달라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출간일기처럼 현재 내가 느끼는 것에 대해 쓰라고 하면 다 토해내고 카타르시스도 느끼면서 신나게 쓰겠는데 특정 주제에 대해 쓰는 것은 일처럼 느껴져서 쉽지 않다.


우울하거나 짜증이 날 때 시험공부는 그냥 하면 된다. 하지만 글은 도저히 써지질 않는다. 컨디션이 좋을 때조차 한두 시간 쓰고 나면 머리에서 쥐가 난다. 마음은 더 써야지 하면서도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글 쓰는 것도 엉덩이 힘이라고 하는데 나는 오래 앉아있어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짜증만 폭발한다. 내가 이상한 것일까? 나의 정신 상태는 왔다 갔다 하니 컨디션을 잘 조절해야 한다. 안 써진다고 좌절하지 말고 나를 잘 달래야 한다.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가 보다.


평소에 보고 싶어서 예약해 두었던 책이 도착했다고 알람이 왔다. 사서 에세이를 쓰느라 다른 책은 보지도 못하고 영화, 드라마도 올 스톱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희로애락에 관한 글도 못 쓰고 있다. 책과 영화, 글쓰기는 나를 숨 쉬게 하는 버팀목이었는데, 이런 것들이 올 스톱되니 힘들다. 블로그에서 이미 책을 내신 분의 글을 읽어보니 직장 다니시면서 3개월 동 안 하루 한 꼭지씩 매일 쓰고 한동안은 책 생각만 하셨다고 한다. 처음에 계약했을 때는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그분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나는 이상하게 잠이 오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 피곤해도 글이 안 써진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1~2꼭지가 최대치다. 의지박약일까? 절심함의 부족일까?


글을 쓰고 싶단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조정을 권한다.

회사 다니면서 돈도 벌고 친구 만나서 술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잠도 푹 자고 글도 쓰기는

어렵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쓰기의 말들/은유 ,39p.


나는 직장을 다녀야 다녀야 하고 잠도 푹 자야 한다. 그러면 드라마, 영화, 보고 싶은 책, 쓰고 싶은 글이 잠시 일시 정지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은 나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것들이어서 시간이 지날 갈수록 배터리가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내가 책을 얼마나 쓰고 싶었는지, 나 같은 초보자에게 이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손에 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명심하자.


약 30꼭지의 글을 써야 하는 데 지금 10개 정도 진행 중이다. 요즘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수정하면서 예전에 썼던 글들이 너무 허접하게 느껴진다. 디테일이 없고 성급히 넘어가는 것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수정하면서 글이 두 배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 글을 쓸 당시에는 글쓰기 시작할 무렵의 블로그 글을 보면서 그때보다 많이 늘었다고 나름 뿌듯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 배로 늘어난 지금의 글도 나중에 생각하면 얼마나 창피하게 느껴질까 걱정된다. 게다가 이번에는 책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


생각할수록 나의 허접한 글에서 가능성을 보시고 연락을 주신 과장님이 참으로 놀랍다. 아무리 봐도 브런치에 나보다 훌륭한 사서 에세이가 넘쳐나는 데 지금도 믿을 수 없다. 그동안 만나 뵙고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느낀 점은 너무나 배려가 많으시다는 거다. 처음 계약서 초안 작성해서 보내주실 때 최종 원고 양도기간을 7월 말까지 적어놓았으나 작업 속도에 맞게 편하게 다시 말씀해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혹시 9월로 연장 가능하냐고 여쭤보았는데 흔쾌히 괜찮다고 하셨다. 속도보다는 완성도가 중요하시다고 했다. 나도 책 출판이 처음이어서 모든 출판사가 이렇게 천사 같으신 건지, 내가 운이 대박으로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계약서가 오고 가고 수요일에 돈도 입금되었는데 아직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독촉하지 않으시려고 배려하는 것일까? 9월 말까지 모든 원고를 한꺼번에 넘기는 건지 아니면 중간중간에 글을 보내면서 피드백을 받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 월요일에 여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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