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마음이 들 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출간일기 13
마지막 꼭지 3개를 쓰면서 지금까지 쓴 글을 다시 보고 있다. 그런데 한글 파일을 열고 글 좀 보려고 하면 어느새 나의 마우스는 쇼핑몰로 향해 있다. 그동안 화장품을 많이도 질렀다. 아마도 내가 쓴 글을 다시 보기 두려운가 보다. 내 글에 대한 ‘확신 없음’과 이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 ‘회피’, 정확히 말하자면 불안이다.
지금까지 출간 일기에 ‘죽갔네’, ‘힘드네’ 하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책을 쓰는 거에 대한 ‘보람’과 ‘신남’ ‘행복’이 깔려있을 것이다. 나에게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으니, 좋은 생각만 들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감정에 당황하여 더욱 크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직전에 쓴 출간 일기 ‘초고를 다 써 가요.’ 글에 너무나 다정한 이웃이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셨다.
써니님, 한 고개 넘기셨어요. 축하해요. 시작이 반이라고 했어요. 초고가 제일 어려운 고개에요. 브런치에 이런 댓글이 있었어요. 조회 수에 대한 제 글을 읽으시고 남겨준. 너무 좋은 일이니 즐기면서 즐겁게 브런치 활동하시면 좋겠어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기쁜데 부담스러울 때, 어디에 더 마음을 둘 것인지는 나의 선택인 거죠. 조회 수가 채찍이 되어 저도 계속 글을 써왔다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격려와 응원은 여전히 필요했던 것을 깨달아요. 미리 안다고 더 쉬워지는 일이 아니죠. 그럼 우리 기대하면서 가기로 해요. 어떤 페이지가 펼쳐질지를 궁금해하면서. 행운을 누리면서. 감사를 잊지 않으면서요. 써니님, 홧팅!
딸이 요즘 좋은 일이 너무 많이 생겨서 불안하다고 했다. 갑자기 댓글이 생각나서 딸에게 좋으면서도 불안할 때 하나의 마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건 엄마 생각이 아니라 엄마가 고민하는 글을 돌렸더니 이웃이 댓글을 남겨주신 거라고도 덧붙였다. 딸은 이웃이 너무나 따뜻하다면서 자기도 누가 이런 고민을 올리면 댓글을 써야겠다고 했다. 이게 선한 행동의 선순환이라는 것일까?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했는데 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유형이라고 했다. 나도 평소에 느끼고 있었던 거라 뜨끔했는데, 그리 배려 깊지 못한 나에게 이렇게나 따뜻한 댓글을 주셔서 너무나 고마웠다.
오늘은 오랜만에 ‘우연히 내게도 편집자가 생겼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사실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는 전혀 없는데 이 책은 지금 내 상황과 딱 맞물리면서 나의 괴로운 심정을 찰떡같이 위로해 주는 글이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나도 언젠가 특정한 상황에 처한 소수의 누군가의 마음에 딱 꽂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면 불안한 마음이 좀 가시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또 그렇지는 않더군요. 담당 편집자와 미팅을 하고 계약을 맺고 선인세를 받고도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혹시 출판사 대표가 원고를 보고는 취소하지 않을까. 혹시 출판사 마케터가 도무지 팔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며 계약을 무르자고 하지는 않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중략)...
교정지를 기다리면서는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옵니다. 작업이 늦어지면서, 혹시라도 내가 쓴 원고와 비슷한 주제의 책이 하루라도 세상에 먼저 나오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중략)...
글을 쓰고, 책을 기다리는 과정은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불안이에요. 글을 쓰고 세상에 책이 나가 있는 그 모든 시간에 불안은 영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책이 나오면 좋기는 하겠죠
좋기는 할 겁니다.
분명, 좋을 거예요.
책은,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지금 불안하면서도 좋은, 사람입니다.
내게도 편집자가 생겼습니다/이경 55~58
이 분도 두 가지 마음이 한꺼번에 든다는 게 참 신기했다. 내 맘에서 일어나는 불안함과 이상행동이 내가 미쳐서 날뛰는 게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해 주고 있었다. 내가 힘든 게 ‘내가 특별히 못나서’가 아니라는 ‘나도 그래’ 메시지만으로도 이렇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왜일까?
이제 나의 부정적 감정을 당황하지 않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깔린 좋은 것들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가끔 내가 부끄럽거나 황당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혼자 나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웹툰 화 하여 상상해 본다. 그럼 가끔은 웃음까지 나오면서 마음이 가벼워진다. 책 쓰는 것도 조금은 힘을 빼고 살짝 가볍게 생각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글로 좋은 말과 알찬 다짐을 멀쩡하게 써놓고 앞으로 내 정신이 어디로 갈지는 며느리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시로 정신을 재정비하고 나도 모르게 자꾸만 쇼핑몰로 향하는 나의 마우스를 다시 한글 파일로 옮겨올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