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를 거의 다 써 가요.

출간일기 12

by 라온써니

"지금 이 정도면 책 한 권 출간할 정도의 충분한 분량이 됩니다. 기존에 보내주신 거 더 검토하실지 아니면 그냥 마무리하실지 결정해 주시면 됩니다."


‘책 한 권 출간할 정도의 충분한 분량’ 이란 단어가 내 머리를 ‘땅’ 치는 것 같았다. 일단 내가 그 많은 글을 썼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의 위력을 느꼈다. 그동안 하기 싫은 것을 꾸역꾸역하면서 일단 써야 한다는 현재에 집중했다. 그런데 막상 초고가 거의 완성되었다고 하니 뿌듯하면서도 불안하다.


솔직히 말하면 긴장감이 풀리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동안 쓰기 싫어 미칠 것 같을 때 자전거를 타면서 스트레스를 달래곤 했다. 어차피 글이 안 써져서 빈둥거릴 때도 책을 읽는 등 정신적 여가 생활을 할 여유가 없었다. 늘 마음은 급했다. 이런 생활도 몇 개월 했더니 습관이 된 건지 막상 시간이 많아지면 어디서부터 나의 생활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뭐든 방향 전환에는 에너지가 필요한가 보다. 아예 책 출간이 완성되었다면 ‘야호! 끝났다.’ 하며 신나게 놀러 다니겠지만 이제 초고 완성이고 편집과 퇴고라는 내가 전혀 모르는 무시무시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에 해방감이 들면서도 부담감도 함께 든다.


수면 밑에 가라앉아있던 고민도 갑자기 떠올랐다.


나의 경험과 생각을 쓴 글이지만, 또한 직업에 관한 글이다 보니 혹시 도서관과 사서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내용이 있지 않을까? 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성별, 나이, 직업 등을 변경해서 각색하여 썼지만, 개인 정보 문제도 신경이 쓰인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내가 쓴 글이 과연 남들에게 읽힐만한 글인지 불안하다. 책을 쓴다는 것은 글 쓰는 거 자체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잘 다루기 위해서도 애써야 할 것 같다.


블로그에서 ‘초고는 쓰레기’라는 글을 읽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과정이 더 힘들다는 건가? 이미 진이 빠질 만큼 빠졌는데 얼마나 더 쥐어짜야 할까? 출판사에선 제목을 좀 더 재미있는 것으로 바꿔 달라고 하셨고, 더 검토해도 되고 지금까지 낸 것으로 초고를 마무리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선택하라고 하시니 당연히 더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추가로 3꼭지 쓰기로 해서 아직 본격적인 검토 작업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벌써 걱정이 된다. 내가 이 정도면 초고는 되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오기는 할까? 괜히 원고만 손에 들고 쩔쩔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판사에서 마감을 독촉한다면 정신없이 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텐데 여러 가지 배려해 주시니 이런 이상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만약 독촉하셨으면 스트레스로 지금까지의 글은 쓰지도 못했을 거다. 처음 제출했던 목차도 상당히 변동이 있었는데도 크게 별말씀 없으시고 글 방향에 대해서도 항상 친절히 설명해 주셨던 과장님이 고맙다. 그리고 책 쓴다고 했을 때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도서관 관장님 과장님 직원들도 정말 고맙다. 글은 내가 썼지만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일이다. 이렇게 운이 대박인 좋은 상황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입 다물고 열심히 해야 하는 데 왜 이리 마음이 심란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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