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어느 순간, 비참하고 불만투성이고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전반적으로 침체된 기분이 들 때, 나는 이런 것을 그저 하나의 감정으로 인식한다. 나는 이런 감정도 결국 변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감정이 내가 세상 속에서 어떤 장소를 찾아가게 하고 친구를 원하게 만드는 에너지라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
30대까지 미친년처럼 달려왔다. 행복에 대해 생각할 겨를 도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대가를 조금씩 돌려받는 느낌이 든다. 힘든 보직에서 3년 버티면서 일을 많이 배웠고, 그 덕분에 직장 생활이 편해졌다. 애 때문에 집 직장 외 개인생활은 꿈도 꾸지 않았다. 애 방학 때는 점심시간마다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집에 와서 점심을 차려주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까이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생쇼를 했지만, 애가 크고 보니 도움을 안 받은 만큼 마음의 빚이 없어서 좋다. 또한 애 양육에 대해 간섭 없이 내 뜻대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작년부터 주변 상황(직장과 집)은 나에게 호의적으로 변했으나, 내 마음이 문제였다. 잊고 지냈던 내 나이 숫자에 놀랐고, 생각지도 않은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내가 왜 이럴까? 스스로 원망도 많이 했다. 나는 지금 행복해야 할 것같은 데 왜 그럴까? 주변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고 자신에게 강요했다.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좋은 것에 금방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너무나 원했던 것도 막상 손에 들어오면 들뜬 감정도 잠시뿐이다.
하지만 최근에 부정적인 감정도 꼭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던 중 예전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독서모임을 고민 끝에 시작했다. 시작은 어려웠으나 그것을 기반으로 쓰기 모임, 블로그, 브런치 운영 등으로 가지를 쑥쑥 뻗어나갔다. 만일 마음이 편했다면 평소에 하던 독서나 하고 맛집 탐방, 어디 놀러 갈 궁리나 했을 것 같다. 힘든 마음을 어쩌지 못해 정신을 분산시키려, 수영도 해보고(1달 만에 끊었지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고, 새로운 시도도 해봤던 것 같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잘 먹고, 잘 쉬고, 놀러 다니고 이런 것도 좋긴 하지만 궁극적인 행복은 예술 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예술 활동은 말처럼 거창한 게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나타낸다면 음악이든, 미술이든, 글쓰기든, 달리기든 모든 활동이 예술이 아닐까?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다. 자신을 표현하면서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고 삶의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다.
작년에 정신적으로 방황하면서 나는 평생 친구인 독서와 글쓰기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를 얻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은 예술 활동이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좋은 분들과 함께 쓰고 읽으면서 위로받고 성장했으며, 내가 이미 가진 것들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부정적인 감정은 힘들고 싫다. 하지만 그것에 파묻히지 않고 발버둥을 친다면 그 애씀이 삶에 큰 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앞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도 나 자신을 원망하는 것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하면 행복한 데로 힘들면 힘든 데로 '예썰!!'하고 받아들이는 용기와 여유를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