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받아들이면서도 도전해야 하는 것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by 라온써니

‘나의 문어 선생님’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한 남자가 문어와의 우정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회복해가는 이야기이다. 영화감독인 크레이그는 최근 2년간 잠을 못잘 정도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던 50대 남자다. 삶의 목적의식을 잃어버린 그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대서양으로 떠난다.


마음을 다스리려 바다 속을 헤매던 중 우연히 암컷 문어를 만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이 범상치 않는 생명체에게 뭔가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문어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1년 동안 바다로 들어가 같은 문어를 관찰하면서, 문어의 은밀한 사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양한 수중생물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문어의 일생은 크레이그 감독에게도, 내게도 경의로움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문어의 생존기술이 가장 놀라웠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카멜레온처럼 몸의 색깔과 모양을 변신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두 다리로 걷는 귀여운 포즈와 상어가 쫓아 올수 없는 유일한 곳인 상어 등에 올라타는 기지를 발휘하는 순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또한 크레이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다리를 살포시 올리는 모습은 영화 이티에서 외계인 이티가 인간에게 손가락을 마주 대는 장면이 생각날 정도로 나를 설레게 했다. 문어가 강아지나 고양이 수준의 지능이 있다고 하니 놀라운 뿐이다.


크레이그가 어떤 심리적 문제가 있었는지 다큐에서 자세히 나오진 않는다. 여러 압박감에 시달렸고 직업이 다큐멘터리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가 보기도 싫었다고 한다. 살다 보면 그동안 억눌러놨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질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침체기에 빠질 수 있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기에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도와줄 수도 없다. 구체적인 원인이 있는 고통이라면 오히려 극복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짜증날 때,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를 때, 가진 게 많은 것 같은데 뭔지 모를 부족함과 허전함에 시달릴 때 풀기가 더욱 어렵다.

다큐를 보다가 갑자기 직장연수에서 알게 된 서울 소재 대학에 재직 중인 50대 남자 교수가 생각났다. 그가 말하길 본인은 가족이 건강하며 화목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 부족한 게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우울하고 무기력했으며, 도대체 왜 그러는지 원인을 알 수 없어 괴로웠다고 한다. 결국 같은 학교 심리학과 교수에게 ‘나 좀 살려 달라’며 상담을 요청했다. 동료교수는 ‘몸을 쓰는 봉사를 해라’는 처방을 내려주었으며, 복지관에서 세신봉사를 하며 심리적 문제를 극복했다고 한다.


크레이그는 야생동물의 삶이 얼마나 유약한지 직접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인간도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유한하며 나약한 삶을 디폴트값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우리가 추구하는 완벽한 충족감은 영원히 얻을 수 없는 ‘파랑새’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많이 가질수록 잃을 것이 많아 더 두렵고 힘들 수 있다.


나도 크레이크나 언급된 대학교수처럼 내 안의 모순적인 생각,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에 자괴감을 느껴왔다. 하지만 유한한 나를 아무리 연구하고 갈고 닦아봤자 충족감을 얻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제는 내 자신만을 중요시 여기는 한정된 시야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크레이크가 광대한 자연에서 위로를 얻고, 대학교수가 주변 이웃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마음의 짐을 덜어낸 것처럼 말이다.


크레이그는 바다에 들어갈 때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자아가 확대된다. 큰 자연의 품에서 그동안 짓누르던 온갖 걱정, 근심이 사라진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인 생로병사도 자연의 큰 흐름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는 사랑하는 문어가 상어에게 공격을 당할 때도 구해주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지켜본다. 자연의 큰 흐름에 자신이 개입하여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문어는 새끼를 낳은 후 일정기간 새끼를 보살피다가 기력을 소진하고 죽는다고 한다. 암컷 문어도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력을 다해 새끼를 키운다.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 엄청난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문어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연에 순응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문어는 수많은 천적의 공격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충실한 하루하루를 산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것은 어쩌면 천적의 부재, 즉 생명에 대한 위협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살아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짜릿한 기적이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도전하는 것! 유한한 삶의 허무함을 받아들이면서도 순간은 영원한 삶처럼 충실히 사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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