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전쟁 : 유방 vs. 항우
진나라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하지만 만세를 기원했던 진시황의 꿈은 이세에 끝난다. 10년에 걸쳐 중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뤘지만(기원전 230년~221년), 그의 제국은 15년 만에(기원전 206년) 멸망한다.
지록위마 사건으로 유명한 간신 조고 때문이지만, 반란군이 함양에 들어서기까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던 무능한 진시황의 아들, 자영의 책임이다.
진나라에 대항한 반란군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유방과 항우이다. 유방은 최종 승자, 항우는 패자이다. 하지만 중국인을 유방보다는 항우를 더 사랑한다
패왕별희
패왕별희의 주인공이 바로 항우이다. 패왕은 항우를 말한다. 항우는 반란군 중 세력이 가장 컸다. 반란이 성공하고 진나라가 멸망하자 항우는 각 반란군 수장들에게 제멋대로 분봉(땅을 나누어 줌)하고는 고향 초나라로 돌아간다. 그는 통일국가를 통치할 이상을 갖지 못했다. 진나라 이전 제후들 간 경쟁하는 구체제로 복귀를 선언했다. 자신을 통일왕국의 황제가 아닌 서초패왕, 즉 초나라의 왕이라고 스스로 축소 정의했다.
별희는 항우가 이미 전쟁에서 진 것을 깨닫고 눈물로 우희와 이별하는 내용이다. 항우는 사면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닫고는 이렇게 투항한 초나라 병사들이 많구나 한탄을 한다.
유방에 비해 항우는 여러 면에서 영웅의 면모를 갖춘 인물이다. 초나라 명장 항연의 손자이고, 덩치도 우람했다. 진나라 대군을 격파하기 위해 강을 건너며 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힌(파부침주破釜浸舟)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진나라 정규군과 강대강으로 맞붙어 철저히 깨부순 장군도 항우고, 진나라 최후의 장군 장한을 투항하게 만든 것도 항우이다. 진정한 난세의 영웅이다.
중국에서 유방보다 더 사랑받는 항우
스토리 텔링 측면에서 유방보다는 항우가 더 강하다. 그의 다부진 결의, 용맹무쌍함, 우희와의 로맨스, 비극적인 결말..
유방과는 차이가 크다. 유방은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겁쟁이다. 팽성에서 패배하여 도망칠 때 수레가 늦다고 자기 아들을 발로 차 떨어뜨리려 했다는 일화는 그의 비겁함을 드러낸다. 유방은 남에게 의지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의지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가였다. 전쟁의 신 한신, 행정의 달인 소하, 최고의 전략가 장량이다. 항우는 범증 하나를 두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것이 항우의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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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은 유방보다는 항우를 더 좋아한다. 유방은 불리하면 거리낌 없이 굴종과 타협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항우는 맞서는 자가 있으면 상황의 유불리를 재지 않고 거병했다. 비겁한 인물에 대한 그의 비분강개와 과감한 결단. 어떤 전투 등 무조건 승리로 이끄는 강인함. 그러나 사면초가의 비극, 우희와의 눈물의 이별. 그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이다.
패인은 전략적 사고 부족, 부하 불신과 권한 위임 실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유방보다는 항우의 스토리에 더 낭만을 느낀다. 충동적이고 실수가 많은 그로부터 우리는 '인간'을 더 느낀다. 역사는 소심하고 비겁한 겁쟁이를 선택했지만, 사람들은 실패했어도 비겁하지 않았던 영웅을 선택했다. 그런 영웅이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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