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과 경청의 힘
만세를 기원했지만 2세에 망한 진나라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나라는 진나라이지만 중국사람들은 진족秦族이 아닌 한족漢族이라는 말을 쓴다.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 중국 대륙을 통일한 후 기원전 206년에 망했으니 천하통일은 15년뿐이 지속되지 않았다. 반면 한나라는 400년 넘게 통일왕국을 이어갔으니 지금의 '하나 된 중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한 나라는 진나라가 아닌 한나라이다.
진시황은 첫 황제가 되어 만세 동안 그 나라가 지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진나라는 이세황제 호해 시대 바로 망해버린다. 진시황은 장남 부소를 다음 황제로 생각했지만 간신 조고가 유서를 바꾸어 다루기 편한, 한마디로 멍청한 호해를 황제로 앉혔다고 한다. 유서가 위조되었다는 물증은 없으나 사마천은 사기에 그렇게 기술했다. 진나라가 어이없이 망한 것을 이세황제 호해 탓으로 돌리며 장남인 부소가 황제가 되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사람들에게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진나라가 망한 주원인은 간신 조고 때문이다. 조고가 환관이었는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으나 그가 호해의 눈과 입을 가리고 조정을 농락한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진승, 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에 반란이 퍼지고 있는데 조고라는 '인의 장막'에 갇힌 황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조고는 말馬을 당연히 말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모두 죽였다. 바로 지록위마指鹿爲馬 스토리이다. 조고는 황제에게 가는 모든 언로를 차단하였고 황제는 반란군이 황궁으로 진격하는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국정농단은 시대를 초월하여 발생한다. 진나라는 허망하게 무너진다.
전혀 영웅스럽지 않은 유방
진나라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유방과 항우의 천하 쟁탈전이 시작된다. 나중에 한고조가 되는 유방은 아무리 봐도 전혀 영웅스럽지 않은 사람이다. 원래 한가하게 농땡이나 부리는 백수건달이었다. 학문도 변변치 못했다. 전쟁만 하면 패전이었다. 삼국지의 유비와 같이 이리저리 도망치기에 바빴다. 팽성 전투에서 패한 유방이 급히 도망치다가 마차가 늦어진다고 자식들을 발로 차 떨어뜨리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하 하우영이 간신히 자녀들을 다시 태워 무사히 도망쳤다고 한다. 항우가 유방을 죽일 수 있었던 기회, 홍문연에서도 그를 구해낸 건 번쾌와 같이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려 한 부하였다. 유방은 화장실을 간다고 핑계를 대고 인사도 않고 현장을 몰래 빠져나왔다.
하지만 유방은 그의 모든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 바로 포용과 경청이다. 남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자신만을 믿은 항우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장량은 원래 항우의 삼촌인 항백과 인연이 있던 인물로 유방의 사람이 아니었다. 진가의 성에서 우연히 유방을 만난 장량은 그에게 병법 등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장량의 말을 무시했지만 유방은 달랐다. 유방은 장량의 말을 경청했고 그를 신뢰했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유방을 장량은 그를 '하늘이 낸 사람'이라 생각하며 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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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밑에 무명의 무사였던 한신을 스카우트하고 대장군으로 파격적으로 승진시킨 것도 유방이 또 다른 책사 소하의 말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방은 중원에서 벗어난 변두리였던 지금의 사천지역에 제후로 봉해졌다. 유방은 중원으로 통하는 관중 지역을 점령하도록 한신에게 명한다. 한신은 기대 이상이었다. 관중을 넘어 북쪽의 위, 조, 연, 제나라가 있었던 지역을 차례로 점령해갔다. 이로써 한나라가 초나라보다 우월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유방이 아닌 유방의 사람들이 중국을 통일한 것이다.
삼불여三不如
천하통일을 한 후 유방이 개국공신을 모아놓고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다. 유방은 신하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항우를 꺾었는지 말해보라고 한다. 개국공신들은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후 유방은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른바 삼불여三不如이다.
夫运筹策帷帐之中,决胜于千里之外,吾不如子房。
군막 안에서 계책을 짜서 천리 밖 승부를 결정짓는 일이라면 나는 장량만 못하다.
镇国家,抚百姓,给馈饷,不绝粮道,吾不如萧何。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달래고 전방에 식량을 공급하고 양식 운반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내가 소하만 못하다.
连百万之军,战必胜,攻必取,吾不如韩信。
100만 대군을 통솔하여 싸우면 승리하고 공격하면 틀림없이 손에 넣는 일은 내가 한신만 못하다.
此三者,皆人杰也,吾能用之,此吾所以取天下也。
그러나 이 뛰어난 인재 3인을 내가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项羽有一范增而不能用,此其所以为我擒也
항우는 범증 한 사람만 있었으면서도 그를 중용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가 나에게 사로잡힌 까닭이다
- 사기(사마천)
한고조 유방이 스스로 인정했듯 그는 전략, 행정, 군사 그 어느 것에도 능하지 못했다. 다만 그것에 능한 사람을 알아보고, 품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힘이었다.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의견을 경청하고, 진가를 인정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다. 항우는 다른 사람을 활용할 줄 몰랐으며, 한신은 인정받기를 바라지 남을 인정할 줄을 몰랐다.
끝까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네" 인정하는 그 간단한 능력이 한나라, 한족의 시대를 열었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조링크
: 이미지
: 삼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