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한어병음, 대만은 주음부호로
한자는 전체 몇 개가 있을까?
얼마나 많은 한자가 있을까? 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중국의 한어대자전에는 54,665자, 한국의 명문한한대자전에는 51,853자, 대만의 대만의 중문대사전 49,905자, 일본의 대한화사전에는 48,902자가 있다고 한다. 한자를 모두 모으면 5만 여자가 되는 것 같다. 대학생이라면 1~2만 자의 한자를 보통 안다고 한다.
실생활에 사용되는 한자는 이보다 적다. 중국 정부가 1988년 제정한 현대한어상용한자표에 수록된 상용자(常用字, 평상시 자주 사용하는 한자)는 2,500자가 있고 그다음으로 자주 쓰이는 차상용자는 1,000자가 있다. 3,500자 정도를 알면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는 뜻이다. 5만 자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숫자이다.
키보드 자판이 수만 개 필요한가요?
사람들이 "중국 컴퓨터에는 자판이 수만 개 되나요?" 묻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어 입력을 위해 음을 먼저 입력한다. 표의문자도 표기를 위해서는 표음문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한자를 입력하기 위해 한글을 먼저 쓰고 그 음을 가진 한자를 찾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하지만 음을 입력하는 방식은 중국과 대만이 다르다.
대만, 주음부호
중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대만은 자신이 중화민국의 정통을 이은 정부라고 주장한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중국어 표준화 활동이 시작됐다. 1913년 중국독음통일회에서 주음부호를 제정하였고, 1918년 중화민국 정부(북양정부)가 공표하였다. 이때 정식 명칭은 '주음자모'였으나 1930년 '주음부호'로 개칭되었다. 처음 제정 시 39개의 부호였지만 현재는 37개를 사용되고 있다.
한자의 일부를 따와 발음을 표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포(包, 중국어 발음 '바오')의 상단 부분 ㄅ을 가져와 b(ㅂ) 발음을 표시한다. 주음부호에서 모음 없이 자음을 읽을 때 '오' 발음을 붙이는데 예를 들어 ㄅ를 '보'라고 읽는다. (듣기에 따라 '뽀어'로 들리기도 한다) 주음부호를 주음부호 자음 첫 4글자를 따와 보포모포(ㄅㄆㄇㄈ, Bopomofo)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만 사람들은 주음부호로 음을 먼저 입력한 후 그 음을 가진 한자를 찾는 방식으로 중국어를 입력한다.
중국, 한어병음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국민당 정부)과 내전에서 승리하여 수립된 정부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을 부정하니 중화민국이 제정한 주음부호도 부정한다. 중국은 1958년 별도의 발음 체계를 제정했다. 로마자를 이용하여 표기하는 방식인데 이를 한어병음, 짧게 줄여 병음(핀인, PinYin)이라고 부른다.
한어병음이 혁신적인 이유는 한자를 차용하지 않고 로마자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1950~1953년 한반도에서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도 중국어 표기 방법으로 서양 국가들이 쓰는 글자를 선택했다는 점이 놀랍다. 중국 아이들은 지금도 5천 년 전통의 한자를 배우기 전에 서양 알파벳을 먼저 배운다. 아이러니하다.
당시 마오쩌둥이 중국어의 세계화까지 고려했는지를 잘 모르겠지만 한어병음은 결과적으로 외국인이 중국어를 배울 때 느끼는 장벽을 많이 낮추었다. 한어병음은 우리가 익숙한 영어 발음을 많이 차용한다. 예를 들어 알파벳 b가 'ㅂ' 발음을 가지는 방식이다. 보포모포를 각각 b, p, m, f로 표시한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쉽게 중국어 발음을 배울 수 있다.
컴퓨터/핸드폰 중국어 입력
그렇다면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어떻게 중국어를 입력할까.
사과는 중국어로 苹果, 발음은 핑궈이다. 이를 한어병음으로 표시하면 PingGuo가 된다. 자판을 중국어 한어병음으로 바꾸고 pingguo라고 쓰면 아래와 같이 그 음을 가진 여러 중국어 단어들이 추천된다. 이 중 원하는 단어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특이할 점은 추전 되는 순서가 같은 음의 단어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또는 내가 전에 사용했던 단어를 고려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위의 사진에서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과 이모티콘, '사과 핸드폰'(애플 핸드폰)가 두 번째, 세 번째로 추천된 것을 볼 수 있다. 네 번째 납작한 냄비(平锅)는 같은 발음이기 때문에 추천된 것이다.
사실 pingguo가 아닌 pg 자음 두 자음만 입력해도 苹果가 추천된다. 우리가 사람 이름을 한글 초성으로만 검색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익숙해지면 한어병음 입력은 생각보다 빠르다.
중국어 음을 입력했을 때 어떤 순서로 관련 단어를 추전 하는지가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사람 대부분은 SoGou(搜狗)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하여 사용한다. 우리가 네이버, 구글에 검색 단어를 잘못 써도 잘 찾아주듯 SoGou 프로그램도 그런 편리한 기능을 제공한다. 개인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기억하여 우선 추천해주기도 한다.
현대 중국인들도 중국어를 한어병음으로 자주 입력하다 보니, 막상 한자가 기억 안 나 잘 못쓰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디지털 치매’ 문제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참조
- 상용한자
- 차이나 키워드 100 (서적)
- 주음부호
- 한어병음
- 한어병음 성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