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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May 10. 2020

[중국어]   중국의 보통화와 대만의 국어

서울말과 평양말, 그보다 더 짧은 거리

 중국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중국어와 대만어가 같은 건가요.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난감하다. 일단 중국어는 보통화를 말한다고 생각하자. 보통화는 중국의 표준어이다. 여기서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뜻한다. 또 하나의 '중국'이 있다. 중화민국, 곧 타이완(대만)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만에는 크게 2가지 언어가 있다. 대륙에서 후퇴하여  국민당 정부가 사용을 강요한 북경어를 기초로  '국어', 기존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대만어'()이다. 중국 대륙에서는 '널리 통하는 표준어'라는 뜻으로 보통화라고 부르지만 대만에서는 중화민'' 국가의 대표말이라는 뜻으로 국어라고 부른다. 대만어는 복건성의 방언인 민남어의 일종이다. 보통화와는 차이가 크다. 국민당 정부는 학교와 공공장소에서 대만어를 금지시키고 국어만을 쓰도록 강요했다. 두 세대 이상 지난 현재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젊은 세대는 대만어보다 국어를 더 편하게 느낀다.


 중국의 보통화와 대만의 국어는 기본적으로 같다. 중국과 대만이 다른 체제로 70년 이상 나뉘다 보니 어휘, 발음/성조상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음식을 표현할 때 '본토 오리지널 맛'을 설명할 때 중국에서는 地道(didao)라고 쓰지만 대만에서는 글자 순서가 바꿔 道地(daodi)라고 표현한다. 요일을 뜻하는 星期의 경우 중국 대륙에서는 둘 다 1성으로 읽지만 대만에서는 두 번째 글자는 2성으로 읽는다. 이모를 뜻하는 阿姨aiyi의 경우에도 중국은 1성, 2성으로 읽지만 대만에서는 3성, 2성으로 읽는다. 이런 단어와 발음의 차이가 종종 발견된다.

 또 하나 큰 차이는 중국은 1964년 공산당 정부가 발표한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를 따라 간체자를 사용한지만 대만은 한국과 같이 이전 한자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대만, 한국, 일본의 한자를 복잡하다 하여 번체자繁体字라고 부른다. 반면 대만에서는 이를 전통 그대로의 바른 글자라는 뜻으로 정체자正体字라고 부른다.


 중국과 대만은 남한, 북한과 같이  사회가 철저히 분리되지 않고 가수, 영화배우, 비즈니스맨  인적 교류를 지속했기 때문에 문화적, 언어적 이질감이 그리 크지는 않다. 보통화와 대만 국어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서울말과 평양말 차이보다   가까운 정도'이지 않을까. 남북한 사람이 만나면 말은 통하지만 일부 어휘 때문에 한번에 이해 못하고 서로 질문해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얼음보숭이를 어떻게 아이스크림이라고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 사람들이 영어(외래어)를 많이 쓰듯 대만 사람들도 영어를 곧잘 섞어 쓴다. 하지만 중국 대륙 사람들은 이를 모두 중국어 한자로 전환하여 사용한다. 중국 사람과 대만 사람이 같이 있으면 처음 몇몇 단어에 대해 서로 질문을 할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에 거의 문제가 없다.


 그럼 왜 중국 정부, 대만 정부는 모두 북경어에 기초하여 표준어를 만들었을까. 1911년 신해혁명 성공 후 청나라는 망하고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이때부터 정식적인 '국어 통일' 움직임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북경의 북양정부, 남경 쑨원의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고려하여 북경어와 남경어를 혼합한 표준어를 만들고자 하였다. 1919년 남방(남경), 북방(북경) 언어의 혼합을 골자로 한 중화민국국음자전(사전)中华民国国音字典을 발표하였으나 성조 등 여러 언어학적 모순으로 비판을 받았다. 세계 공용어로 삼기 위해 만든 인공어, 에스페란토가 실패한 이유와 비슷하다. 그 말을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보급한단 말인가. 다분히 이론적인 발상이다. 여러 비판에 1921년 북경어를 중심으로 한 성조를 재발표하는 등 혼란이 있었다. 1932년에는 '국어'의 국음상용어휘사전国音常用字汇이 발표되었다. 일종의 자주 사용하는 단어집이다. 국어 통일 노력은 계속되었지만 정국 불안에 언어 통일 노력이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1920년대는 신해혁명과 북양정부의 반혁명, 장제스의 북벌 등이 계속되었고, 1930년대는 국민당, 공산당간의 내전이 심화되었다. 1937년부터는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표준어 정책의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중화민국을 중심으로  '국어 통일' 정책은 2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내전 끝에 국민당의 대만으로 후퇴한 이후에도 양쪽에 의해 모두 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대만에서는 국민당이 북경어를 중심으로  보통화, 국어를 표준어로 삼아 보급하였다. 국민당은 '본토 회복'을 부르짖으며 중화민국의 언어를 대만 현지인에게 강요했다. 이렇게 중국과 대만은 같은 언어를 쓰게 되었다. 공산당 타도를 외치며 대륙 회복을 주장하던 장제스의 언어 정책이 중국과 대만의 언어 장벽을 무너뜨렸고, 중국은 이 사실을 활용해 대만 수복을 지금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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