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하나, 녹차 한 병의 행복
28일간 격리, 몇 번의 고비
혼자만의 시간, 여유, 자유라고 생각했던 격리 생활은 일주일이 지나자 악몽이 되었다. 2주 후부터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좋아하는 드라마, 영화, 유튜브 방송을 아무리 봐도 시간이 계속 남는다. 당황스럽다. 새벽에 답답하다는 생각이 잠이 깬다. 불을 켠다. 벽과 문을 바라보면 마음이 급 우울해진다. 운동을 하고, 중국어 공부를 하고, 가져온 책을 읽는 등 자신을 바쁘게 만든다. 애써 격리 생활 중이라는 생각을 지우려 노력한다.
가족, 친구와 통화를 한다. 언제나처럼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차마 혼자 있어 외롭고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묵묵히 참고 견뎌내야 훌륭한 아빠, 좋은 남편이라는 강박관념. 나의 아버지도 이렇게 살으셨을까.
그래도 시간은 간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 격리해제일이다. 평소 일주일 2-3번 하던 PCR 검사를 격리해제일에는 두 번을 한다. 입, 코 그리고 또 입, 코. 이 나라의 코로나 통제 의지에는 끝이 없다. 중국은 중국이다. 중국 방식에 토를 달면 자기만 피곤할 뿐이다.
격리가 끝이 아니다. 28일 격리가 끝나면, 다시 28일 관찰 기간이 있다. 관찰 기간에는 다시 주 2회 PCR 검사를 해야 한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나야 중국 정부는 당신이 코로나 확진자가 아님을 믿는다.
사실 14일 이후 자기 집이 있다면 자기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 갓 부임한 주재원이 자기 집이 있을 리가 없다. 회사에서는 원하는 곳을 미리 정하면 그곳에서 자가 격리할 수 있다고 한다. 나가서 집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집을 고를 수가 있나..라고 당시 나는 잘못 생각했다. 총 28일 격리라면 어떻게든 격리호텔 14일, 자가격리 14일로 나누기를 추천한다. 자가 격리라면 그래도 발코니에서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볼 수 있다. 창 없는, 창이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수 없는 호텔 방은 견딜 수 없다.
한 시간동안 추워도 밖에서 차를 기다려
오후 4시에 격리해제 연락을 받고 호텔 1층 로비에서 기다린다. 언제나처럼 우주복(방호복)을 입은 사람들만 왔다 갔다 한다. 생각해보니 28일 동안 우주복을 안 입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제 호텔 밖을 나가면 평범한 사람을 볼 수 있겠지라고 기대한다.
회사 차가 5시에 오다고 연락을 받았다. 호텔 1층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정말 그것만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추운 겨울날 도로를 서성거리며 회사 차를 기다린다. 지나가는 차,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라는 사람만 봐도 행복하다. 실실 웃는다. 내가 미친놈 같다.
쇼핑몰 입장에는 싱청마가 필요해
회사 차는 나를 다른 호텔로 보내준다. 아직 중국에서 집을 못 구했기 때문이다. 또 호텔? 구역질이 나지만 그래도 이전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젠 나갈 수 있다!!
호텔에 집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간다. 호텔 앞에 쇼핑 몰이 있다. 쇼핑몰을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보안 직원이 싱청마를 달라고 한다
“请出示行程吗”
“싱청마를 보내주세요”
싱청마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답답해하며 내 핸드폰을 직접 조작해준다. 싱청마는 내가 최근 14일 동안 어디를 갔었는지 보여주는 위챗에 있는 미니 앱이다. 만약 최근 14일간 있었던 장소에서 최근 코로나 이슈가 있다면 싱청마는 녹색에서 황색 또는 빨간색으로 바뀐다. 그럼 실내 쇼핑몰, 공공기관 등을 들어갈 수가 없다.
거리에서는 마스크 쓴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쇼핑몰과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싱청마 확인과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있는 듯 했다.
아이스크림, 녹차 하나의 행복
바깥공기를 충분히 쐬고 호텔로 돌아오며 좀 허름한 편의점에 잠깐 들렸다. 아이스크림 하나, 녹차 하나를 골랐다. 내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주인 딸내미로 보이는 직원은 의자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내가 카운터로 가자 한 마디 한다.
”八点五块“
“8.5위안”
무슨 말이지? 보니 카운터에 QR코드가 있었다. 나보고 QR코드 찍고 알아서 계산하라는 뜻이다. 중국은 QR코드 결제가 대세임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호텔 방에 돌아와 아이스크림 하나, 녹차 한 병을 원샷에 끝낸다.
그냥 이 소소한 자유가 너무 행복하다. 내일은 짬뽕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