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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Feb 02. 2022

D+28 첫 출근

격리 해제 후 첫 출근


아파트 앞에서 회사에서 배차해준 차를 탄다. 회사로 가는 길에 맑은 하늘이 보인다. 원하는 대로 밖에 나가고, 물건을 사고, 마음껏 거리를 걷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행복하게 느껴진다. 새벽과 아침 사이, 새가 날아오른다. 새로운 회사는 어떨지,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기대, 설렘, 약간의 어색함과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에 마음이 복잡하다.


눈치 싸움


회사에 도착한다. 아무 문제없는 옷매무새를 만진다. 사무실로 올라가는데 직원들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생김새만으로는 누가 주재원이고 누가 현지채용인인지 구분이 안 간다.


인사(Human Resource Management)가 만사라는데, 인사(Greet)도 만사다. 자신을 잘 소개하고 좋은 인상을 줘야 한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뜻이 다른 두 인사가 한자로는 人事로 같다.


법인장님, 주재원과 먼저 인사를 한다. 그리고 현채인과도 인사를 한다. 직원들이 나를 보고 웃어준다. 나는 중국어 교재 챕터 1에 나오는 '만나서 반갑습니다 (认识你,很高兴)'만 말했는대도 직원들이 발음이 좋다면 칭찬을 해준다. 착각하면 안 된다. 이 미소와 칭찬은 새로운 부장에 대한 중국식 예의다. 상사와 부하 직원 간 권력 거리는 한국보다 중국이 더 멀다. 아직까지는 서로 눈치 싸움 중이다.


주재원과 현채인, 한방 링다오와 중방 직원


현지채용인과 협력을 얼마나 잘하는가가 주재원 근무의 전부이다. 현채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불가피한 갈등 상황도 지혜롭게 해결해나가야 한다. 보람 있고 즐거운 주재원 생활과 악몽 같은 나날의 차이가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주재원과 현채인 사이에는 한방 링다오, 중방 직원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한방 링다오(领导영도)는 한국 주재원 경영층을 일컫는 말이고, 중방 직원은 말 그대로 중국 직원들을 가리킨다. 보통 법인장, 영업부장, 재무부장 등 부장 이상 관리층은 한국에서 파견 나온 주재원들이고 과장 및 과장 이하 직원들은 중국인이다. 주재원은 소수, 현채인이 다수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은 한방 링다오를 통하도록 절차가 설계되어 있다. 한국 본사의 해외법인 관리 방안이다.


보통 30대 중후반 이상을 주재원으로 파견 보내니 회사 역사가 10년 남짓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그 이상이라면 주재원 부장과 현재인 과장 사이에 나이 역전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국 여행을 와서 만났다면 형님, 누나로 모셔야 할 분들을 여기에서는 과장, 부하직원으로 만난다. 나이 많고, 경험 많은 현채인 과장들을 얼마나 잘 이끄는지가 무척 중요하다.


조선족보다는 교포


주재원과 현채인 사이 경계인이 있다. 조선족이다. 민족 초등학교를 나온 조선족은 주재원과 한국어로 업무를 논할 만큼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다. 억양이 다른 면이 있지만 젊은 조선족일수록 한국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를 많이 봐서 그런지 발음도 한국 식이다.


중국에서는 조선족 직원이라는 말보다는 교포 직원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조선족 사람을 만났을 때도 "조선족이신가요?"보다는 "교포시지요?"라고 묻는다.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를 일컫는 말이고, 교포는 우리의 해외동포라는 뜻이다. 조선족보다는 교포가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서로를 더 가깝게 느끼도록 만드는 표현이다.


경계인이라고 불렀지만 조선족 교포는 중국법에 따르면 엄연한 중국인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비자 발급 등에 있어 교포와 외국인을 동일하게 취급하지는 않는다. 회사에서 교포 직원과 대화하고 있자면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같은 정체정을 가진 민족이었는데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교포들은 아직도 집에서는 조선말을 쓰고,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해 먹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의 구심력은 더 강해진다. 주재원과 교포 직원 간 관계는 아직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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