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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Dec 21. 2022

너는 친중이냐, 반중이냐

술 맛이 씁쓸하다 

중국 회식 : 머릿수를 맞춰라


오래간만에 중국 고객사와 회식이 잡혔다. 중국 회식은 하얀색 아니면 빨간색이다. 오늘도 역시 하얀색이다. 도수 높은 바이지오우(백주) 말이다. 홍주(와인)을 마시는 날은 많지 않다. 


백주는 도수가 낮으면 30도, 높으면 50도를 훌쩍 넘는다. 첫 잔을 마실 때 술이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가는 쓰라림이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이런 독약을 왜 돈 내고 마시나 싶지만, 몇 잔만 마시면 헬렐레 인사불성이 되어 에헤헤 실웃음을 혼자 자아낸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술을 택한다. 


중국 회식 시 서로 되도록 머릿 수를 맞추어 나간다. 머릿수가 적으면 위험하다. 중국 사람들은 술자리에 나온 상대방에게 꼭 자리에 찾아가 일대일로 건배를 하는 습관이 있다. 만약 우리가 세 명이 나왔는데 상대방이 여섯 명이 나왔다면 우리의 공격 횟수는 상대방의 공격 횟수의 절반뿐이 안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술을 두 배 먹는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술자리 준비의 기본은 머릿수 맞추기이다. 


전투력 부족


낮에 직원에게 머릿 수를 맞추어 가자 이야기했지만 정작 누가 나가는지는 묻지 못했다. 저녁 장소에 도착해서야 아군 전력의 큰 공백을 발견했다. 절반은 술을 안 마시는 여직원이다. 


'이런 센스 없는....'  


이제 와서 중국인 관리자를 탓해도 이미 늦었다. 명수를 맞추자는 얘기는 당연히 유효 전투력 기준이지.. 옥수수 주스를 시키고 조신히 앉아있는 저 직원들은 오늘 나의 알코올 섭취량 저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


낮에 찝찝한 느낌의 정체를 이제야 깨달았다. 불길한 느낌은 틀릴 때가 없다. 오늘은 그냥 장렬히 전사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술이 들어간다


역시나 다양한 공격이 들어온다. 처음 봤다고 한 잔, 앞으로 잘 봐달라고 한 잔, 제가 더 잘 부탁하죠 한 잔, 오늘 음식 어떻냐고 물으며 한 잔, 다음에는 더 맛있는 집에서 보자고 한 잔.. 작은 백주 잔으로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냥 분주기(分酒器) 채로 마신다. 백기사, 흑기사가 난무하고 아군, 적군 오인사격이 빈번해진다. 내가 술을 먹고, 술이 나를 먹고, 나중에는 술이 술을 먹는다. 


분주기(分酒器)


드디어 나의 평형감각 중추가 마비된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려워진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잔다. 소란스런 소리가 귀에서 점점 멀어진다.  


우리는 원래 한민족?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나는 얼굴을 돌려 바라본다. 


'또 이놈이구나'


이전에도 나에게 몇 번이나 실수를 한 그 놈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감추어진 본성은 술로 드러난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여러 실언을 시작한다. 


"원래 중국과 한국은 같은 민족이다" 


알 수 없는 근거로 혼자 계속 설명한다. 친근감의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달갑지 않다. 중국 교과서에 한국이 예전 중국 "속했다"라는 표현이 있는지 몇몇 중국인들은 술에 취하면 그런 얘기를 하고는 했다. 트럼프가 공개한 중국 주석과의 대화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세상에 순수한 민족이 어디있나. 중화민족이라는 말 자체가 한 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족 + 55개 소수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여러 민족이 이리저리 섞이고 융합되어 지금의 중국 대륙 중화민족, 한반도의 한 민족이 되었다. 민족과 혈통의 강조는 너무 OLD 하다.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세계시민이라는 취지에서 "같은 민족"을 뜻했다면 이해가 갈 만도 하지만 그게 아니다. 왠지 "위대한 부흥을 하고 있는 중화민족에 편입되지 않을래" 제안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    


너는 친중이냐 아니면 반중이냐?


점입가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얘기로 혼자 자가 발전하더니, 한국은 친중이냐 반중이냐 결정을 해야 한다며 아무런 정치력 영향력이 없는 나에게 답변을 요구한다. 친중이라면 중국과 함께 "화평발전"을 할 수 있다 설명한다. 왠지 CCTV 뉴스 앵커를 통해 들어봤던 말인 것 같다. 반중이라면 미국과 함께 "일을 벌려봐라(搞事)" 위협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주변 사람들은 허허실실을 멈추고 그 직원의 입을 막기 시작한다. 


"不好意思,他喝醉了"  


안다. 술 취한 거. 하지만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사람들이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중국 사람들도 미안해하는 눈치다. 


상대방 회사 관리자가 그 직원을 집으로 보내고 나에게 와 사과를 한다. 어디에나 상식 밖의 사람이 있고, 예의 바른 사람이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너는 친중이냐, 반중이냐" 마지막 들었던 말이 머리를 빙글빙글 맴돈다. 나는 친중도 아니고, 반중도 아니고 지중知中이다, 너는 그럼 한국을 아느냐라고 묻고 싶지만 말할 상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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