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갑의 전쟁. 을은 어찌해야 할까.
중국에서는 카톡이 되지 않는다. 희한한 것이 아주 안 되는 것이 아니고 메시지가 계속 안 오다가 1,2주에 한번 어느 날 갑자기 한 번에 몰아서 받게 된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날을 '하늘이 열리는 날'이라고 불렀다. 고국의 메시지들이 허공을 외로이 떠돌다가 어쩌다 한번 하늘이 열리는 날 우리 핸드폰으로 떨어진다는 상상이다.
2014년부터 카톡이 되지 않았다는데 2018년 어느 날부터는 네이버 블로그도 안되기 시작했다. 정말 답답했다. 전문적인 지식이야 구글이나 위키피디아를 통해 얻을 수 있었지만 생활에 필요한 정보, 노하우들은 보통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 얻고는 했는데 이 소중한 채널이 막힌 것이다. 2019년부터는 다음Daum도 차단되었다. 자주 쓰던 사전도 안됐다. 욕 나올 지경이었다. 회사 컴퓨터는 한국으로 통하는 전용선을 쓰기 때문에 한국과 동일한 환경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지만 개인 핸드폰으로는 가장 자주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없다. 카톡, 다음, 네이버, 네이버 블로그에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미국 사이트도 접속이 안되니 참 답답하다. 카톡이 안되니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위챗을 사용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위챗을 다운로드 받으라고 일러줬다. 이런 방식으로 중국 IT 회사 서비스를 사용할 수뿐이 없게 만드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악랄하다고 해야 할지. 후발주자에게는 똑똑한 전략이고 선발주자에게는 비겁한 전략으로 보일 테다.
참고로 설명하자면 중국의 검열은 참 무섭다. 중국에서 위챗을 사용하자면 우리는 항상 모니터링당하고 있다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 직원 중 한 명은 농담으로 친구들에게 '우리 IS나 가입할까' 메시지를 보냈다가 그날 저녁 자신의 집에 공안(경찰) 차가 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키워드 인식 방법'으로 메시지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있지 않을까 의심했다. 주재원들은 문자든 통화든 시진핑, 천안문, 심지어 하나님 등 정치, 종교에 대한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기를 꺼려했다. 아무리 한국말로 한다고 해도 언제 자동 번역되어 수집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IT 기술의 발달이 정보와 소통이 증가하고 표현의 자유를 실현할 기회가 늘었지만 이를 모니터링하고 감시하는 기술도 더불어 발달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명확히 긋고 그 선을 넘지 말기를 재차 경고했다. 대개 그 선은 '사회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카톡 서비스를 차단한 이유도 (한국 정부 통한 설명을 듣자면) '테러 방지'이다. 테러 방지, 범죄인 조사라면 정식적으로 공조 수사를 요청하여 진행하면 될 것을 우선 막아놓고 뒤늦게 이렇게 설명하니 무언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상호주의를 따른다면 우리도 마땅히 바이두, 위챗을 막아야겠지만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수입 주도형 국가'인 미국은 잃을 것이 없다.
미국의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는 2009-2010년 중국에서 서비스가 차단했다. 중국이 민감해하는 티베트, 신장, 인권 문제 등 중국 인민에게 '유해'한 정보가 유통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웨이보, 위챗, 요쿠 같은 자국 IT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는 추측도 있다. 구글은 중국 정부의 '중국 법률' 준수 요청에 2010년 중국에서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여기서 중국 법률이란 중국 정부의 검열 요구에 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과 자유의 나라 미국의 기업이 이러한 중국 정부에 응할 것인지 내부 격론이 오고 갔다고 한다. 당시 구글은 전체 매출의 3%에도 미치지도 않는 중국 사업을 위해 '사회주의 국가의 검열 요청에 응한 비도덕적 기업'이라는 오명을 선택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미국이 미국에서 중국 App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인의 정보를 중국 공산당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이유이다. 9월까지 틱톡, 위챗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한다. 미국인의 정보를 실제 중국 공산당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증거를 내놓을 수 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런 일련의 사건의 본질은 미중 패권 전쟁이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떠오르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이다. 더구나 이미 미국의 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이 중국에서 막혀있는바 중국으로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어렵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러한 조치는 '시장 원칙에 위배되며, 국제 산업 공급사슬의 안전을 위협하는 패권적 행동'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나는 요즘 미국이 '보호무역'을 외치고 중국이 '공평, 공정한 시장 원칙'을 주장하는 모습이 참 우습게 느껴진다.
잃을 것이 없는 미국은 앞으로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2020년 11월 대선 전까지 이러한 행보가 지속될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민주당이 집권한다하여도 방식만 달라질 뿐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정책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 때리기는 미국 국민들이 지지하는 정책이다.
대중 수입이 많은 미국은 이렇게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수출로 밥 벌어서 먹고사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이런 용감한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수출 많이하는 우리나라가 협상력에서 열위라는 말은 뒤집어보면 우리는 그만큼 평소 중국과 거래를 통해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말이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형식상 갑이 우위에 있지만 실제 돈은 벌고 실리를 위하는 이는 을이다. 을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갑을 즐겁게 한 후 돈을 거머쥔다. 자존심만 차리고 실리를 잃는 정책을 우매한 정책으로 간주되는 시대다. 반대로 명분보다 실리를 취하는 정책이 도리어 우수하다 평가받는다. 당시에는 비겁하다 평가받았던 광해군의 균형외교를 지금은 Best Practice로 교실에서 가르쳐진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고소득 전문직들은 모두 계약서상 을이다. 그러나 누가 이들을 무시하는가. 우리는 고래 싸움에 너무 많이 끼어들 필요가 없다. 사실 거기에 시간을 낭비할만한 여유도 없다. 그저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에 더 집중하여 어떻게 기술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면 된다. 그것 하나 잘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차별화된 경쟁력이 잃는다면 그저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저가격 하청업을 수행할 수 뿐이 없다. 대한민국이 하청업체 을이 아닌 고소득 전문직 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