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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Oct 04. 2020

[외교]  미국 패권에 도전, 중국은 다른가?

 트럼프가 재선이 되든 되지 않든 미국의 대중국 강경 대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1970년대 냉전 시대 미국은 패권 경쟁을 위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했다. 1991년 소련 연방 붕괴로 성공했다. 지금은 중국이 다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 (관련 글 :  미국과 중국, 신냉전의 시작)


 일본의 도전


 사실 이인자의 ‘도전’에 대한 미국 ‘응전’의 역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 일본 버블이 터지는 순간 일본의 GDP는 미국의 53%였다. 1980년대 일본 제조품 경쟁력은 세계 최고였고, 미국의 대일본 무역적자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을 압박하여 1985년 플라자 합의로 환율 조정에 '합의' 한다. 일본 엔화의 가치 절상으로 일본 제품의 달러화 수출 가격을 상승시켜 일본의 대미 수출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겠다는 의도였다. 대미 수출 감소로 불황을 맞이한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행한다. 저금리로 만들어진 과도한 유동성은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렸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대출을 제한하고 금리를 다시 인상했으나 1990년 부동산 버블이 끝내 터지고 만다. 그 후로 일본은 장기 불황을 맞게 된다. 미국의 의도였을까 아니면 일본의 정책 실수였을까. 아무튼 1980년대 미국의 경제 패권을 위협하던 일본의 도전은 이렇게 좌절되었다.

  

<일본 니케이 지수> *나무위키


 소련의 도전


 소련의 경우 일본과 달리 경제뿐만이 아니라 공산주의 vs. 자본주의라는 체제 경쟁자였다. 미국은 소련과 군비 경쟁을 벌여 소련의 재정을 파탄 냈다. 원자 폭탄, 수소 폭탄을 개발하고 핵탄두 숫자를 놓고 경쟁했다. 소련의 계획경제는 시장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수뇌부의 의지'에 따라 중공업 중심의 군수 산업만을 '계획'했다. 민생 관련 소비재 산업은 열악한 수준이었고, 군수산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공업용 기계, 화학 등 전반적인 민간 산업 기술력이 떨어졌다. 기형적인 경제 구조였다. 자존심만을 내세운 미국과의 군비 경쟁으로 재정은 바닥났다. 1991년 11월 29일 소련 연방정부는 은행 잔고에 이틀 동안 사용한 현금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외화현금지급을 중단했다.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1985년 고르바쵸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다. 그는 소련식 개혁/개방(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급진적인 시장 경제 도입은 가격 불안, 재화의 수급 불균형, 지하 경제 확대 등의 부작용을 일으켰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거구의 러시아 국민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이 뉴스에 방영되었고 이는 소련 경제 정책 실패를 상징했다. 혼란스러운 경제 상황에 따른 불만은 국민들의 소련 공산당의 통치력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고르바쵸프의 언론 자유화를 포함하는 '개방' 정책은 결과적으로 소련 공산당의 통제력 상실을 가속화시켰다. 고르바쵸프는 공산당 보수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1년 소련 연방의 해체를 선언한다. 제국의 몰락이었다. 부언하자면 서방에서는 고르바쵸프에게 노벨 평화상을 줄 정도 그를 높이 평가하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를 '강력한 제국 소련'을 서방 국가에 헌납했다며 그를 '매국노'로 여긴다. 1996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고르바쵸프는 0.5%의 표를 얻었다.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비축량> *위키피디아


 중국의 도전


 지금은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이번 패권 다툼은 이전과 다르다.


1. 중국은 소련을 학습했다


 중국 공산당은 치밀하고 신중하다. 이전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와 소련 연방의 해체를 보고 배웠다. 그래서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박에 이전 일본과 같이 일방적으로 굴복하지 않고 있으며, 소련과 같은 급격한 정치 개혁, 언론의 자유화를 경계한다. 중국 방송에서는 소련의 붕괴를 예로 삼으며 지금 중국 공산당이 얼마나 ‘적절한 속도’ 중국을 변화시켜가고 있는지를 선전한다. 소련이 당 간부의 관료화, 특권화로 인민의 지지를 잃었다고 중국 텔레비전에서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교수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전 소련과 같이 미국과 무리한 군비 경쟁도 하지 않는다. 당시 소련은 GDP는 미국의 절반 수준이면서 군비는 미국과 동등한 수준을 유지하고자 산업 전반에 불균형을 가져왔다. 현재까지도 러시아는 핵탄두를 6천500개, 미국은 6천185개를 가지고 있지만 중국은 290개 보유에 그친다. 중국은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소비재, 산업재, 철강/조선과 같은 중공업, 건설업 등 전통적인 산업으로부터 전기 자동차, AI, Big Data, 우주 산업, 5G 포함 정보기술, 바이오, 로봇 등 첨단 산업까지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소련은 개혁의 실패, 개방의 역풍(언론 자유화로 소련 공산당에 대한 불만 급격히 확산)으로 소련 공산당의 지도력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나중에는 통제력을 상실할 수준까지 이르렀지만 중국은 헌법 1조에 '공산당의 영도'를 추가할 정도로 공산당의 지도력, 통제력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소련에서는 고르바쵸프와 옐친이 소련 연방의 유지와 소련 해체(러시아의 독립)를 놓고 갈등을 벌였지만 중국에서는 그런 갈등이 없다.    

<소련과 중국의 비교>


2. 긴밀히 연결된 세계 경제


 냉전 당시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 간 경제 교류가 단절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가 긴밀히 연결되어 이를 분리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아이폰은 중국에 위치한 (대만 기업의) 공장에서 생산된다. 테슬라도 상하이에 전기 자동차 공장을 짓고 있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 벤츠, BMW, 폭스바겐 등은 모두 중국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 130개 국가의 최대 무역 교역국이 중국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도 포함이 된다.


 이러한 경제 관계(Economic tie)는 외교 지형까지 변화시킨다. 미국 편에 서야 하는지, 그렇다면 중국과의 경제 교류에서 얻는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는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일대일로 추진을 위해 중국이 2016년 설립한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에 많은 유럽 국가들이 참여했고, 미국이 유럽 국가에 화웨이 사용 금지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자 혼란스러운 모양새다. 이런 '복잡한' 경제 구조는 향후 미중 패권 경쟁의 예측도 '복잡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이번 중국의 패권 도전은 이전과 다르다. 중국은 더 크고 영리하며, 세계는 더 복잡하게 얽혀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패권다툼은 더 복잡하고 장기전이 될 듯하다. 외줄 타기를 하는 한국의 입장은 더 어려워진다.


관련 글

 : 미국과 중국, 신냉전의 시작


참조 링크

 :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 소련 국가 재정 파탄 위기

 : 핵 군비 경쟁

 : 전 세계 핵탄두 보유량

 : 美国为什么会产生这种“新冷战”思维  (중국어)

 : USA vs China: The new cold war on the horizon | DW Analysis (영어)

 : 미국, 중국 패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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