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이 '자기착취'가 되지 않도록

교양철학, 마크 코켈버그 <알고리즘에 갇힌 자기계발>

by 책약국

바뀌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사회’다


어느 날 퇴사 선물이라며 책 한 권을 받았는데 표지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마크 코켈버그<알고리즘에 갇힌 자기계발>이란 책이었다.


- 719kcal 더 먹을 수 있어요

- 전체 유저 랭킹 108위 / OO님 축하해요! 3단계 달성

- 홈트레이닝 36분 12초 / 하루 평균 걸음 수 6000보

- 지난달보다 8만 원 더 쓰고 있어요

- 작심삼일 방지 모임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오갔다. 이 표지는 무슨 일인가? 퇴사해도 나태해지지 말고 자기계발에 정진하라는 깊은 뜻이 담긴 걸까? 안 그래도 퇴사하면 운동도 하고 챗GPT랑 영어도 공부하려 했다만 이런 도움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정을 되찾고 제목과 목차를 찬찬히 살펴보니, 다행히 자기계발에 힘쓰라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은 로봇처럼 뚝딱뚝딱 업데이트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 ‘자기’를 계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신 나홀로 아등바등하지 말고 모두가 다 함께 이 판을 바꾸자고. 각 개인이 죽어라 ‘자기’를 계발하는 대신, 모두가 함께 이 ‘사회’를 변혁할 방법을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사회 변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국가/기업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자기계발(관리)이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이 몸이 안 좋고 체력이 부족하다면, 단지 자기관리를 못한 탓일까? 물론 아니다. 사람들은 워라밸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도 병이 생긴다.


하지만 그게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회 문제에서 비롯됐을지라도. 우리는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탓하며 이미 고갈된 정신력과 체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운동에 투자한다. 없는 시간을 쥐어짜서라도 말이다.


책은 AI로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며 자기계발을 권하는 기업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운다. 우리는 각종 앱에 나의 데이터를 성실하게 기록함으로써, 이를 상품화해 이익을 얻는 기업에 무임금으로 착취당한다.


자기계발 서비스는 한 발 더 나아가 정량화된 수치로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내 타인과의 순위 경쟁을 유도한다. 이용자가 서비스를 충실히 이용하도록 이끌기 위해서다. 한 개인의 삶이 알고리즘 안에서 철저히 설계되는 것이다.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도록 교묘하게 설계된 시스템 안에서, '자기착취'가 '자기계발'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나’보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건 이상적인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모두가 갓생을 외치며 분초를 다투며 사는 이 시대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관심을 갖고 생각해 볼 문제다.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개인의 악착같은 노력도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모두의 관심으로 사회가 변화할 때, 비로소 과열된 자기계발의 대물림과 굴레를 끊어낼 수 있다.


사회의 ‘변화’ 대신 개인의 ‘의지’와 ‘열정’이 요구되는 시대. 당장 사회를 바꾸긴 어려울 테지만,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성장이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진정으로 자기 계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우리를 그런 존재로 만드는 사회, 그런 방식으로 빚어내는 사회도 거부할 필요가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의 일개 참가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참가자들이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여 비참한 삶을 조금 개선하고 말 게 아니라 경쟁 사회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잘못된 것이 사회적 문제라면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_146



작가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


우리는 늘 나란 존재와 삶을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어 가고자 애쓴다. 문제는 내가 삶의 주인공일지라도, 자유자재로 나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과 타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삶은 늘 예상치 못한 변수로 가득하다. 모험담 속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가가 설계한 세계관과 사건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것과 같다.


등장인물이면서 동시에 작가가 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온전히 자기 마음대로 써 내려갈 수는 없다. (…) 자기 계발은 스스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는 하지만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는 하나의 과정이자 이야기다._122~123


이에 저자는 인간이 뼛속까지 관계적이고 환경의 영향을 받기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주어진 운명에 마냥 순응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의 노력만으로 모든 걸 극복하기엔 어려우니,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하며 주어진 여건에 건설적으로 대응할 것을 권한다. 위대한 서사 속 주인공들도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해피엔딩에 이르는 건 아니니까.


주인공들은 모험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고, 좋은 동료들을 만나 자신을 짓누르는 운명에 저항하며 성장을 거듭한다. 해리포터가 계단 밑 허름한 방에서 두들리 가족의 구박 속에 힘든 시간을 보내다, 호그와트 입학 후 자신의 능력을 깨우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 영웅으로 거듭난 것처럼 말이다.


자아란 함께 쓰고 해석하고 살아 내는 일종의 이야기다._160



기술과 공존하는 삶, 어떤 존재를 동료로 삼을 것인가.


그렇다면 주인공으로서 주어진 특혜 중 하나. 누구를 나의 조력자로 삼을지도 참 중요한 문제다. 책에서 눈여겨볼 건, 인간만이 아닌 기술까지 나의 서사를 함께 써내려 나갈 공저자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삶의 큰 변화는 그 무엇보다 기술에서 비롯됐다.


자아를 변화시키기 위해 기술을 바꾸는 일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 기술은 (...) 인간 서사를 함께 창조하고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가기도 하기 때문이다._164


최근에는 챗GPT가 우리의 삶에 등장하며, AI 기술이 일상 속 문제도 함께 논의하고 힘을 합쳐 해결할 수 있는 대상으로 거듭났다.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에서는 AI가 나의 사고방식을 학습하며, 인간보다 더 마음이 잘 맞는 직장 동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AI를 동료 삼아 고차원적인 업무까지 척척 해나가는 이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우리가 이 시대에 발맞춰 성장하고 싶다면, 기술의 발전을 넋 놓고 지켜볼 것이 아니라 기술과의 공생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다른 이들이 짱짱한 능력을 갖춘 AI 동료와 합을 맞춰 승리의 이야기를 써나갈 때, 홀로 빛바랜 연장을 쥔 채 고독한 싸움을 이어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저 “무엇이 좋은 삶인가?”가 아니라 “기술과 공존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이다. 그러므로 AI에 관해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AI 시대에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과 AI가 공존할 수 있는가? 공존할 수 있다면 어떻게 가능한가?_172



책처방

1. 이 책이 필요할 때
-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 자기계발 열풍 이면의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고 싶다면.
- 자기계발을 조종∙착취의 수단으로 만드는 기술·알고리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2. 처방문
- 끝없는 자기계발이 점점 지친다면 생각해 보자. 이것이 과연 정말 나의 문제인지,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인지 말이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면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다. 그건 좁게 보면 나의 직업과 직장, 또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 사회의 문제라면, 그때는 우리가 사는 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의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나란 존재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모여 함께 만들어 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글귀들

우리는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이용해 돈을 벌고 기술은 그런 현실을 뒷받침한다._12
우리는 데이터를 생산해주는 가축과 다름없으며 끊임없이 추적되고 감시당한다. (…) 사람들은 온갖 자기 계발 앱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추적하고 행동을 기록한다. (…) 우리는 스스로를 24시간 감시 체제에 몰아넣은 채 얌전히 자신에 관한 데이터를 생산하여 그것을 상품화하는 기업들에 업로드한다._81
지식 생성 프로세스는 AI와 AI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선사한다. (…)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두 앱이 알려주고 달성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도 말해 준다. (…)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는 기술과 그 기술을 만들어 돈을 버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_99
인간에게는 서사적 정체성이 있고 인격이 있으며 전통이 있고 육체적, 유전적 한계가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꾸고 발전시킬 수 있지만 자신을 완전히 알지도 못하고 완벽하게 통제할 수도 없으며 무엇이든 될 수도 없다. (…) 우리는 자기 자신과 한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_137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온전히 자기 책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_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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