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정신분석학, 레나타 살레츨 <알고 싶지 않은 마음>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은 정말 ‘알고 싶지 않아서’ 읽게 된 책이었다. 관심을 가질수록 심난하기만 한 나라 사정도, 무언가 정상이 아닌 나의 몸 상태도 굳이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진실을 파고들면 정말 감당하지 못할 감정의 파고에 휩쓸리게 될 것 같아 최대한 진실을 아는 것을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도 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진실을 마냥 외면하면서 살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든 것이다. 진실을 피하는 건 문제를 방치하는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 사이 문제는 곪고 곯아 수습 불가능한 지경이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을 집어든 건 이런 나의 마음이 괜찮은 건지, 아니면 괴로울지라도 진실을 좀 더 대담히 파고드는 자세가 필요할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앎과 무지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 잡는 법을 알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충격적인 사건, 사랑, 질병 등 감당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사람들이 택하는 무지의 전략들을 살펴보기에 꽤 괜찮은 책이다.
사람들은 늘 불편한 정보를 무시하고 부인하고 부정하기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입을 다물 방법을 찾아왔다._16
병을 인정하지 않는 환자, 연인의 결함에 눈 감는 사랑의 맹점 등 다양한 사례를 보다 보면 문득 나의 모습이 겹쳐지곤 한다. 내가 외면하고 싶던 진실은 물론, 진실 앞에 비겁했던 나의 모습까지. 자연스레 거울치료가 되는 느낌이다.
물론 모든 걸 꼭 다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진 않는다. 모든 진실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가 짊어질 수 있는 진실의 무게도 분명 한계가 있는 법. 그렇기에 적당한 외면과 무지는 버거운 삶을 지탱하는 주요한 축이 되기도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의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앎과 무지의 경계에서 나는 어느 쪽으로 넘어가야 할지. 시시때때로 마주할 이 문제는 아마도 사는 내내 짊어지고 갈 하나의 딜레마일 테다.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맞부딪치며 최선의 선택을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왜 알고 싶지 않은가? 안다는 건 곧 진실의 무게를 짊어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은 당연하게도 대개 좋지 않은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들이다. 나를 감정적으로 무너트리거나, 아무 문제도 없이 잘 굴러가고 있던 내 삶을 휘청거리게 만들 수도 있는 것들.
그렇기에 때로는 진실을 외면하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는 정말 살기 위한 방편으로 진실을 묻길 택한다. 어느 누구도 당사자에게 진실과 마주하라며 섣불리 강요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흔히 지식 추구를 찬미한다. 그러나 알지 않으려는 욕망도 생존에 똑같이 중요하다. 눈을 감는 것, 어떤 것을 보지 않는 것, 고통스러웠거나 감당하기 힘든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앎의 추구만큼이나 열정적으로 끌어안는 전략이다._231
내게 그러한 것들은 보통 몸과 관련된 것들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질환을 앓고 있는 만큼, 혈액 검사에도 꽤 많은 항목이 따라붙는다. 저렇게 쥐 잡듯 검사를 하는데 뭐 하나 이상이 없을까 싶을 만큼.
그렇기에 최근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받게 된 혈액 검사 결과는 정말 알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 수많은 검사 항목이 모두 정상으로 나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하루하루 몸이 망가져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졌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몸의 컨디션까지 극악으로 치달았다. 다가오는 진실이 나의 숨통을 죄어오고 있었다.
결국 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았다. 진실을 파헤친 자리에 내가 묻힐 판인데 아는 것이 대수일까. 물론 다른 검사를 통해 몸에 특별한 이상은 없으리라는 추측을 토대로 내린 결정이었고, 다행히 이후 몸에 생겼던 문제도 빠르게 회복됐다.
하지만 진실을 등지고 도망쳤다는 찜찜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외면해 버린 그 진실 안에는 내가 정말 알아야만 했던 무언가가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진실과 외면 사이에서 방향을 잡는 건, 결국 재고 재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택하는 것이다. 외면한다 해도 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그에 응당한 책임이 따른다.
그렇기에 진실을 외면했다면, 적어도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야 진실과 외면 중 어느 한쪽을 택했을 때, 내가 포기한 가능성은 무엇이고 감당해야 할 무게는 무엇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이 가능할 때, 뒤늦게라도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여지와 희망을 남길 수 있다.
“무지 자체는 악이 아니고 악의 원천도 아니지만, 우리가 무지에 무지할 때, 무지가 우리 삶에서 의미하는 바에 무지할 때 악이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_40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의 존재조차 버거워 이를 애써 아닌 척, 모른 척 부정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했다는 사실마저 부인한다면, 우리는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진실의 가능성은 고려하지도 못하고 헤어날 수 없는 무지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 테다.
압도적인 고통 속에 <소년이 온다>를 썼다고 고백한 작가 한강은 이야기한다. 결국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 고통과 마주해야 한다고 말이다.
보통 너무 힘들면 그걸 오히려 안 쓰고 잊어버리고 피할 수도 있죠. 사실은 그러려고 아주 많이 노력해요. 사실은 많이 도망가고, ‘그래, 안 쓰면 되잖아 많이 생각하죠.’
그러나 내가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경험, 나의 감정, 또는 나의 인간에 대한 질문, 모든 회의와 의심과 그 모든 것들. 그런 것들 도망가면 좋죠.
(하지만) 다시 오면 여기 또 있잖아요. 그대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그래서 결국은 곪죠. (…) 그래서 결국은 대결을 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힘들죠. 대결하기 싫죠. 그래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하는 거죠.
출처: 작가 한강의 이야기 中|문학동네 유튜브 채널, 프리미엄 강연 '당신들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인정한다면, 이는 언젠가 진실과 마주할 수 있는 희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알아야만 하고, 알아야만 하는 때라면 용기를 내 진실과 마주할 수 있기를. 내게 허락된 무지의 시간 속에서 진실을 마주할 힘을 갖춰 나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1. 이 책이 필요할 때
- 알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했을 때 사용되는 무지의 전략들을 알고 싶다면
- 사람들이 ‘앎’ 대신 ‘무지’를 택하는 심리를 파헤쳐 보고 싶다면
- 부인∙무지∙무시에서 비롯되는 개인적∙사회적 현상을 살펴보고 싶다면
2. 처방문
- 진실과 무지 사이에 어떤 것을 택할지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의 무게를 고려해 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실을 마주하는 것에도, 피하는 것에도 모두 그에 응당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진실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진실을 외면하고 싶다면 적어도 내가 어떠한 사실을 등졌는지 만이라도 인정하자. 그 모든 걸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무지의 시간 속에서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남겨둘 수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과 마주하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 어떤 사람들은 약간의 정보나 탐사에서도 큰 괴로움을 느껴 무섭거나 불쾌한 것을 알게 되는 일을 막기 위해 온갖 종류의 보호 기제를 만들어 낸다._125
우리는 상대의 “결여”를 덮기 위해 환상을 만들어 내고, 그 환상이 무너질 때 사랑에서 빠져나오거나 사랑을 증오로 대체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증오 또한 우리가 눈감을 것을 요구한다._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