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100퍼센트'의 순간을 찾아서

한국에세이, 박상영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by 책약국

온전한 휴식은 어떻게 가능할까


완벽한 휴식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었다. 여행지 느낌 가득한 표지와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란 제목에 영혼을 뺏긴 탓이다. 여행지에서 이 책으로 완벽한 쉼을 완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품게 됐다. 그래서 아무리 읽고 싶어도 꾹 참고 참았다.


무려 반년에 달하는 긴 인내 끝에 제주도로 떠난 4박 5일의 휴가에서 이 책을 펼치게 된 이유다. 나에게 ‘휴식’이란 일에 대한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 오롯이 혼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회사는 물론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집에서도 분리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웬걸. 제목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건만, 책은 지독히 쉴 줄 모르는 작가의 물음으로 시작된다.


온전한 휴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나를 진정으로 쉬게 할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룩할 수 있을까?


심지어 책은 여행 에세이인데, 작가는 책 초입부터 자신은 '여행을 통해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선포한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무슨 의미인 건지. 완벽한 휴식을 찾아 제주도까지 날아온 노력이 무색해지는가 싶었지만, 다행히 책은 나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책은 옆에서 쉼 없이 재잘거리며 여행의 흥을 돋워주는 입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작가의 재기 발랄한 문체 덕에, 여행 중 벌어진 각종 사건들이 꽤나 유쾌하고 생동감 있게 읽혔다. 책을 펼치면 아무 근심, 걱정, 생각 없이 그 속에 빠져들어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책에서 등장한 제주 가파도도 정말 반가웠다. 내가 제주도에서 유유자적하는 동안 작가는 가파도 어딘가에서 꽤나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이 작가를 실시간으로 중계해 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작가의 여행길에는 항상 절친한 이들이 함께 했는데, 글에서 그들에 대한 애정이 한껏 묻어나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학창 시절 친구들부터 김연수 작가, 대학교 교수님으로 만나게 된 이금희 아나운서까지 등장인물도 꽤나 다채롭다. 작가가 방황하던 시절부터 서른다섯의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을 함께 하며 추억을 쌓아온 이들이었다.


사실 책을 읽고 나니 여행지보다는 작가와 함께한 이들이 기억에 더 많이 남았다. 이것은 여행기로 포장된 휴먼 에세이가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작가가 수많은 여행 끝에 도달한 결론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이 곧 휴식의 동의어’라 믿었던 작가는 소중한 벗들만이 자신에게 진정한 쉼을 가능케 한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책을 읽으며 나의 온전한 쉼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내가 휴식이라 믿었던 게, 진정한 휴식이 맞는지. 실제로 나는 ‘쉼’을 찾아 자발적으로 백수가 되었지만, 잘 쉬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 어리둥절한 사람이 됐다. 그저 일 걱정 없는 자유시간이 ‘온전한 쉼’의 답은 아닌 듯하다.


나를 진정으로 쉬게 할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어디에 있을지,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였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느끼느냐


나는 쉬어야 했다. 얼른 생각을 멈추고, 얼른 쉬고, 얼른 마음을 추스르고 빨리 다음 책을 써야만 했다. (…) 그런데 도무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박상영 작가는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른 채, 쉼 없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었다. 백수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도 그저 일만 안 할 뿐.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른 채 쉼 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백수지만 하루하루가 배움과 성장통의 연속이다. 필라테스, 영어/챗GPT 공부, 독서, 기타 연습 등… 가히 체육, 영어, 컴활, 국어, 음악 수업과 자습으로 하루 시간표가 꽉 찬 고등학생과 별 다를 바 없다. 쉬려고 백수가 됐는데 이게 맞나 싶다.


그렇다고 길어야 반년에서 1년이 될 듯한 공백기를 무의미하게 보내기도 싫었다. 그간 시간이 없어 못 했던 것들을 이참에 바짝 해두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내가 나를 몹시 탓할 테니. 결국 무엇을 해도, 안 해도 찝찝한 난 휴식의 순간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방황 중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애초에 ‘쉼’을 모르는 인간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내게도 분명한 휴식의 감각이 있었다. 그때는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벗어나 공원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세상 행복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왠지 백수가 되자 오히려 ‘쉼’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지금은 똑같이 대낮에 공원을 걸어도 회사를 다닐 때만큼의 쾌감을 얻을 수가 없다. 똑같은 행위를 해도 만족도가 다른 건, ‘무엇을 하며 쉬느냐’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제주도에서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과 함께 여행을 즐기던 때를 떠올려본다.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에 만족스러웠던 순간들. 그때도 특별한 무언가를 하진 않았다. 그저 지금의 일상처럼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내가 느낀 건 분명한 ‘쉼’의 감각. 그래, 감각이었다.


여행은 그때가 아니면 다시는 쉽게 접하지 못할 순간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매 순간을 더욱 온전히 보고, 느끼고, 경험하려 애쓴다. 일상,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오직 그 순간의 모든 감각을 한 톨 남김없이 흡수하려 집중한다. 그리고 그때 피어오르는 감흥이 큰 만족감을 준다. “아, 내가 정말 쉬고 있구나.”


여행은 곧 새로운 순간과 감각의 총체다. 그리고 우리는 애초에 그 모든 걸 제대로 누리겠다는 각오를 하고 여행을 떠나기에 그 안에서야 ‘쉼’을 느끼는지 모른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비슷한 맥락으로 종일 사무실에 갇혀 있던 일상에서는 대낮에 공원을 걷는 것도 꽤나 즐거운 여행이었을 테다. 다시 사무실에 갇히기 전 초록의 공간에서 햇빛을 받으며 걷는 순간, 순간의 감각은 얼마나 소중한가.


이미 익숙해진 시간과 공간에서는 감각 또한 무뎌지기에, 일상의 시름을 흐릿하게 만드는 휴식이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여행의 도움이 필요한지도.



순도 100%의 휴식 = 감각 100%의 순간


이제 내게 ‘순도 100%의 휴식’이란 ‘감각 100%의 순간’이다. 무엇을 하고, 안 하고에 집착하기보다 감각을 곤두세우려 한다. 일상 속에서도 내가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반짝임의 순간들을 찾을 수 있도록.


그럼 하루를 꽉 채운 열정 가득 시간표 안에서도. 지금은 틱, 틱 거리기만 하는 기타 소리가 맑게 울리기 시작하는 찰나의 순간에서도 '쉼'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반짝임이 곧 인생이라고 믿기로 했다.



책처방

1. 이 책이 필요할 때
- 온전한 휴식, 여행의 의미에 대해 되새겨보고 싶을 때
-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여행 에세이를 찾고 있다면.
- 사람 사이의 관계를 따뜻하게 풀어낸 에세이를 읽고 싶다면.

2. 처방문
- 온전한 쉼을 찾고 있다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무엇이 느껴지는가'에 집중해 보자. 내가 있는 공간의 풍경, 온도, 소리, 냄새.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형태, 맛, 식감 등 내가 존재하는 순간의 모든 감각에 한껏 몰입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책임과 의무가 짓누르는 시간과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 순수한 감각의 세계에 가닿는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해방감과 충만감 속에 쉼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귀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 수도.
나는 마음먹었다. 완벽을, 완벽히 폐기하리라고. 지금이 아닌 언젠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꾸는 게 아니라, 그저 작은 빈틈을 찾아보리라고. 단 1퍼센트의 ‘공백’이 주어지더라도 기꺼이 그것을 그러안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리라고. 휴식이라는 행위에 어떤 완벽을 기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휴식’과는 거리가 먼 개념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설적으로 여행을 하는 중에 나는 가장 열렬히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일상의 장소들과 내 삶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다. 그들이 내게 주었던 어떤 따뜻함이나, 깨달음에 대해서도. 물음표와 느낌표, 말줄임표만이 가득한 내 삶에서 유일하게 쉼표를 가능하게 해주는 건 나의 친구들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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