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세이, 장일호 <슬픔의 방문>
나는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고통으로 부서진 자리마다 열리는 가능성을 책 속에서 찾았다. 죽고, 아프고, 다치고, 미친 사람들이 즐비한 책 사이를 헤매며 내 삶의 마디들을 만들어 갔다._10
내가 구사하는 일상적 개념의 연상세계는 매우 관념적이었습니다. ‘실업’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은 이러저러한 경제학 개념이었습니다. ‘빈곤’은 엥겔계수가 연상되었습니다. 메마른 이론과 개념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생각이란 얼마나 창백한 것인가. 창백한 것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비정한 것인가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 인간에 대한 애정이 사상된 사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_<담론>, 신영복
‘실업’이라는 단어의 연상세계에 사람을 심기로 했습니다. 내가 잘 아는 실업자 친구의 얼굴을 연상세계에 앉히는 작업입니다. 온종일 행상과 막노동으로 고달픈 삶을 이어 갔던 그를 실업의 연상세계에 심으려 했습니다. ‘실업’이란 단어와 그 친구의 얼굴이 동시에 떠오르면 나의 생각 자체가 훨씬 더 인간적인 것이 될 듯했습니다._<담론>, 신영복
환자를 ‘증상’이 아닌 ‘사람’으로 대할 수 있었던 건 수없이 환자 집 문턱을 넘나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곳에서 살고 무엇을 하는지와 같은 삶의 맥락은 진료실에 들어온 순간 모두 사라진다. 모든 것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오직 한 가지, 증상만 남는다. (…) 하지만 왕진을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거기에는 ‘한 사람’이 자신의 방에 앉아 있다. (...) 그는 자기 삶의 맥락 속에 앉아 있으므로 나는 그를 ‘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_<슬픔의 방문>, 236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_<담론>, 신영복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는 슬픔의 상상력에 기대어 나의 마음에 타인의 자리를 만들곤 했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는다._251
내 마음에는 할머니 무덤도 있고, 아빠 무덤도 있고, 종현의 무덤도 있다. 살아 있는 일은 마음에 그렇게 몇 번이고 무덤을 만드는 일임을, 슬픔은 그 모든 일을 대표하는 감정이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_84~85
내가 경험한 폭력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어느 것도 사소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를 둘러싼 풍경도 달라졌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내가 당한 일은 내 잘못이 아니며, 나는 이 고통을 ‘자원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_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