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휩쓸릴지라도 다시 나의 호흡으로

프랑스 소설, 에마뉘엘 카레르 <요가>

by 책약국

삶이 마냥 평온할 수 있는가?


우리는 과거는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미래는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을 억제하고자 나는 종종 다음과 같은 기가 막힌 유대 격언을 되뇌곤 한다. <당신은 신을 웃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분께 당신의 계획을 한번 얘기해 보라.> 하지만 나는 계속 신을 웃게 만든다._82


<요가>는 프랑스 작가 ‘에마뉘엘 카레르’의 자전적 이야기다. 예기치 못한 악재들로 피폐해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지난한 과정을 담고 있다. 작가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며 삶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자신하던 찰나 벌어진 일이었다.


삶에 있어 행복만을 기대하는 건, 앞뒤가 있는 동전 던지기에서 그 어느 한 면만 계속해서 나오길 바라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성공적인 삶을 이어가던 카레르가 한순간 바닥으로 내리 꽂힌 것처럼 삶은 언제 요동치고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요가와 관련된 책을 쓰기 위해 명상 수련을 떠났던 카레르는 지인의 죽음, 정신과 입원, 불륜 관계에 있던 연인과의 이별을 잇따라 겪으며 삶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시간 속에 놓인다. 요가와 명상 등으로 자신의 삶을 평온하게 다스리고자 애써왔던 30년 간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의 삶을 지탱하던 끈들은 하나, 둘 맥없이 툭툭 끊겨 나간다. 미래를 장밋빛으로 물들이곤 하는 인간에게 때때로 신은 얼마나 모질고 잔인한지.


카레르는 이에 자신의 심적, 정신적 고통을 토로하면서도 다시 자신의 삶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내적 투쟁을 이어간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일상을 되찾아간다. 중요한 건 그 어떤 불행에도 끄떡없는 견고함이 아닌, 설사 주저앉게 되더라도 다시 자신의 삶을 쌓아갈 수 있는 회복성이었다.



인생이란 누덕누덕 기워 나아가는 것


두서없이 떠오르는 한심하고도 가련한 생각들을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내 옆에 머무르게 놔두었다. (…) 그것들이 다가와도 더 이상 내 영혼을 삼키려 덤벼드는 마귀들처럼 보이지 않고, 차라리 약간 땅딸막하고 사람을 조금 귀찮게 만드는 친근한 개들처럼 느껴졌다. (…) 쓰디쓴 맛의 막대기를 던지고 또 던지다가, 어느 순간 <이젠 됐어>라고 중얼거리며, 귀찮게 구는 늙은 개들은 좀 실망한 기색으로 주위에 서성거리게 놔두며 선잠에 빠져들곤 했다. (...) 친근한 개들은 꾸벅꾸벅 졸면서 뭐라고 꿍얼댔다._399~400


<요가>에서 잇따른 불행과 시련에 속절없이 휩쓸리며 고통스러워하던 카레르는 어느 순간 마음을 완전히 놓은 듯 보였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자신에 대한 증오∙좌절감 등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들 때면 애써 극복하기보다, 슬쩍슬쩍 밀어내기만 하는 뉘앙스였으니까.


자신을 끈덕지게 찾아오는 친근한 개를 상대하듯, 삶의 일부로서 그 모든 것들을 초연하게 감내하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다시 보니 이건 단지 해탈과 같은 초연함이 아닌 온갖 시련 끝에 내면이 더 단단해진 카레르의 여유로 보였다. 야수처럼 사나운 불행이 그의 삶을 할퀴고 집어삼키려 했지만, 카레르는 그 모든 걸 버텨낸 이였다. 그 살기 가득한 위협을 넘긴 직후기에, 어지간한 시련은 그저 친근한 개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살아냈고, 살아있었으니까.


나는 자신이 어떤 부상병처럼 느껴졌다. 후방의 어느 황폐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본인은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은, 지저분한 꼬락서니지만 속이 편한 병사 말이다._399


상처가 아문 자리에 흉이 지듯, 내면 또한 감정의 굴곡을 넘나들며 굳은살이 배기듯 더욱 단단해졌을 것이다. 카레르는 자신을 부상병에 비유했지만, 나에게 그는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무장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어지간한 적의 위협에는 오히려 짐짓 여유를 부리는 무장 말이다.


삶이란 전장과 같아 수없이 크고 작은 시련이 닥치고, 때로 상처를 입는 일도 생길 테다. 하지만 생사고락을 버티고 살아내는 순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힘과 지혜를 쌓게 된다.


배우 윤여정 선생님은 인생을 '누더기'에 비유한 바 있는데, 카레르의 '부상병'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빨리 정신 차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삶을 지향해야 돼. 인생은 누더기야. 죽을 때까지 새 옷 입고 가겠다는 심보는 대체 어디서 나는 거니._배우 윤여정, 한 예능 프로에서


인생은 완벽할 수 없기에, 결국 누덕누덕 기워가야만 하는 것. 각자가 지나온 삶의 굴곡을 따라, 천을 덧대고 꿰매며 더욱 견고한 짜임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맛은 삼삼한데 계속 손은 가는 평양냉면처럼 오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그건 아마도 카레르가 치열한 고민 끝에 얻어낸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유려한 문장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일 테다. 사람들이 평양냉면에 빠져드는 게, 그 삼삼함 뒤에 우러나는 깊은 국물의 맛 때문인 것처럼.



책처방


1. 이 책이 필요할 때

- 연이은 시련에 지쳤을 때,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자 한 인물의 내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요가(명상)에 담긴 삶의 철학을 알아보고 싶다면.


2. 책처방

- 인생은 마냥 평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삶의 풍파가 나를 덮칠지라도 이를 버텨내고 끝내 나의 호흡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다. 삶이란 해진 자리를 누덕누덕 기워나가며, 더욱 견고한 짜임을 지닌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 나가는 것!


3. 참고사항

- 카레르는 요가와 명상이란 말을 큰 구별 없이 사용하는데, 책 속에서는 명상에 대한 13개의 정의가 소개된다.

- 카레르에게 벌어진 악재로 인한 극적인 전개를 기대한다면 소설 자체는 생각보다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책 초반에는 명상 수련을 떠난 카레르의 요가(명상) 찬가가 꽤 길게 이어진다. 명상에 대한 정의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원리 등을 꽤나 상세히 기술한다. 이것은 사실 소설이 아닌 요가 철학서가 아닌지. 장르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깊어질 때쯤에야, 카레르의 악재가 그의 삶에 찾아들며 이야기가 진척된다. (175p~)



글귀들


난 내 인생의 마지막 4분의 1이 그 많은 수첩들에 그토록 많이 베껴 썼던 글렌 굴드의 이 문장대로 흘러가기를 바랐다. <예술의 목표는 아드레날린의 일시적인 분비가 아니라, 어떤 평온하고도 경이로운 상태를 삶 전체를 통해 끈기 있기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_42~43
삶이 우리에게 미소 지을 때 곧 이것이 우리를 사정없이 후려 패리라는 점을, 또 우리가 어둠 속을 헤맬 때 곧 빛이 나타나리라는 점을 아는 일은 유익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신중함을 부여하며 자신감을 준다. 또 순간의 우울한 감정들을 상대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_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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