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의미. 기억. 미래를 위해

한국소설, 한강 <소년이 온다>

by 책약국

소년이 다시 내게로 왔다


2024년 10월 10일 저녁, 정말 경이로운 순간이 우리에게 찾아들었다. 민음사 유튜브에서 ‘노벨 문학상 발표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어 눌러봤더니 이미 댓글창에 물결치던 ‘한강’이란 이름. 말 그대로 ‘한강의 기적’이라며 대한민국이 들썩인 순간이었다. 마치 타고난 운명처럼 어떻게 이름도 ‘한강’인지.


작가 한강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이란 위업을 이룬 순간인 만큼, 다른 누구도 아닌 한강의 글에 온전히 빠져들어 그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노벨 문학상 수상평에 가장 부합하는 것처럼 느껴진 <소년이 온다>였다. 그렇게 처음 만난 후 3년이란 시간을 돌아 소년은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 5.18이 나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되살아난 순간이다.


처음 읽을 때도 느꼈지만 책의 구성과 전개 자체가 빈틈이 없다. 총 6개의 장은 주인공 '동호'와 각각 다른 주변인들의 시점으로 바뀌어 가며 전개된다.


모든 걸 이해하기엔 아직 어렸던 동호부터 계엄군에 맞서다 조사실에서 모진 고초를 겪은 시민군. 가까운 이를 잃고도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치욕 속에 살아야 했던 이들과 이름 없이 희생된 실종자들의 넋까지. 폭력의 역사가 한 개인을 넘어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과정이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각 장의 시간대도 5.18 당시로부터 현재에 가까운 시점으로 점점 옮겨오며, 폭력의 경험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옥죄며 망가트리는지 긴 호흡으로 보여준다. 5.18이 단지 과거의 비극이 아닌, 아직도 이 사회에 짙은 상흔으로 남아 있는 결코 끝나지 않은 사건임을 깨닫게 한다.


책 속의 인물들은 그 시간 속에서 묻는다. 누가 그들을 죽였으며, 왜 그들이 죽어야 했는지. 이렇게 참혹한 폭력을 반복하며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이 역사 속에 증명된 인간의 본질인지 말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압도적인 고통 속에 쓰며, 거의 매일을 울었다고 고백한다. 독자가 그러한 감정이 서린 글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고통의 밀도 또한 결코 옅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건, 책 속 인물들이 던진 물음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하기에.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날의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소년은 더욱 많은 이들의 마음속으로 찾아들 테다. 소년과 함께 폭력적 권력에 맞서던 이들의 서사 또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되살아나길. 그 모든 마음의 전율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는 역사적 비극에 맞설 수 있는 불씨가 되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_135



과거를 기억한다면 끝끝내 우리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던 중, 이전에는 그저 가볍게 쓱 넘겼을 글귀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수상의 의미를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이 문장으로 볼 수 있지 않을지.


증언. 의미. 기억. 미래를 위해_166


<소년이 온다>는 생생한 증언으로 과거를 살아 숨 쉬게 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 파묻혔던 아픈 기억을 되살린다.


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 희생자와 가깝던 이들의 아픔을 드러내며 인간의 잔인한 본성 및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이 꿈틀거리게 한다. 우리가 평안한 일상을 보낼 때도 누군가는 아직 아픈 과거와 사투를 벌이고 있음을, 현재의 사건에서도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폭력의 악습이 잔재해 있음을 눈치채게 한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_126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_207


자연스레 현재와 미래에서는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길 바라게 된다. 까맣게 잊고 지냈던 폭력의 역사를 자각하며, 다시금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민감해지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맞닥뜨렸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말미암아 다시는 재현되지 않으리라 여겼던 과거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고 나아갔다. 권력의 어둠이 다시금 우리를 집어삼킬 수 없도록 미래를 밝히기 위해. 지난날 광주를 기억하며 우리는 그렇게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과거의 상처를 담은 기록은 우리의 현재와 곧 다가올 미래를 지키는 힘으로 되살아나곤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과거를 떠올리며 끝내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213p)' 나아가도록 하며.

괴로울지라도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_213



누가 소설을 무용하다 말할까.


소설을 읽는 게 참 무의미한 일이라 여겼던 때가 있다. 실화 기반일지라도, 결국 누군가의 상상으로 살을 덧붙여 탄생한 가상의 이야기니까. 기쁨, 슬픔, 재미 등 감정적 여흥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이 없다 여겼다.


물론 지금은 소설 또한 우리의 삶과 내면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글이라는 걸 안다. 내가 모르는 세계와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바로 소설이니까.


하지만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지닌 의미는 내가 평가했던 소설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내가 백 마디 투쟁한 것보다 작가님의 책 한 권으로 5·18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_<소년이 온다> 주인공 고 문재학 군의 어머니 말씀 中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고 문재학 군 어머님 말씀에 문학이 지닌 힘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그 처절하고 지난한 투쟁으로도 국내에 채 다 알려지지 못했던 진실이 이제는 글의 힘을 빌려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시간과 국경을 뛰어넘어 5.18이란 역사적 사건의 아픔을 전 세계인이 온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그 누가 소설이 지닌 가치를 낮게 볼 수 있을까? 글이 지닌 힘이 이토록 크다는 것이 증명됐는데.



책처방

1. 이 책이 필요할 때

- 광주 민주화 운동 한가운데 있던 이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을 읽고 싶다면

- 폭력의 역사가 한 개인과 집단에 남기는 깊은 상흔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노벨 문학상 수상평에 부합하는 한강의 작품을 읽고 싶다면



2. 책처방

- 고통스러울지라도 과거의 아픔을 잊지 말고 애써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건,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증언으로서의 기록은 우리의 촉을 곤두세우며, 현재에서 과거의 비극을 눈치채 이에 맞설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우리가 어떠한 선택으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지켜가야 할지 알려주는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



글귀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_134
저는 그 폭력의 경험을, 열흘이란 짧은 항쟁 기간으로 국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체르노빌의 피폭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몇십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_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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